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아이팟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4년 전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아이팟은 많은 MP3 플레이어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이팟이 자신의 운명을 바꾼 것은 그 후 2년이 지난 2003년 1월 6일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 그 자리에서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의 탄생을 알렸던 광고 필름을 틀었다. 오리지널 버전과 달라진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빅브러더에게서 도망치는 여자 아이가 들고 있는 물건. 이게 매킨토시에서 아이팟으로 바뀐 것이다. 이날 애플 컴퓨터는 4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가 달린 새 아이팟을 선보였다. 잡스는 "아이팟이 수십 년 전 소니 워크맨이 한 것처럼 음악 감상 방법을 바꿀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의 호언대로 새 아이팟은 음악 파일 저장기기의 흐름을 CD에서 휴대용 하드디스크로 옮겨놓았다. 파디즘(poddism.아이팟에 열광하는 현상), 파디(poddy.아이팟 애용자) 등의 신조어가 속속 만들어졌다. 아이팟용 케이스나 액서서리도 덩달아 히트했다. '나는 아이팟을 쓴다, 고로 존재한다(ipod, therefore I am)'의 저자인 영국의 딜런 존스는 아이팟을 불의 발견이나 바퀴의 발명에 견주기까지 했다. 2005년 아이팟은 세계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연말이다. 이맘때면 신문 경제면을 장식하는 단골 메뉴들이 있다. 올 최고 기업, 최고 경영자, 최고 히트상품 등 …. 올해의 메뉴는 아이팟이 독차지했다. 이를 확인해 주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①올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주가가 오른 기업은? 애플 컴퓨터다. 이달 9일까지 애플 주가는 131% 올랐다. 2위인 구글(112%)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②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올해 과학기술 부문 최고 리더는? 애플의 창업주이자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다. ③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선정한 올해 최고 히트 상품은? 아이팟이다. 일본에서만 올해 150만 대가 팔렸다.

뉴 옥스퍼드 사전은 며칠 전 올해의 단어로 팟캐스트(Podcast)를 선정했다. '아이팟으로 보는 개인 방송' 을 뜻하는 팟캐스트는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의 합성어다. 아이팟이 창조한 새 세상이 공식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버드대 도로시 레너드 교수는 문화 아이콘을 '존재와 열망의 상징'으로 정의했다. 그는 기술이 세상을 읽는 눈과 만나면 강력한 문화 아이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아이팟은 이를 증명했다. 4년 만에.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