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수다] 초등학생에게 주는 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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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만수 학림논술아카데미 연구원

언론사(신문사.방송사)는 신입기자 선발을 위한 시험에서 글쓰기능력을 본다. 시험은 '논술과 작문'으로 나누어 보는 게 관례다. 왜 그럴까. 논술과 작문은 서로 문장기술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작문은 '배구'고 논술은 '축구'다. 배구는 손과 발을 다 써도 좋지만 축구는 손을 쓰면 핸들링 반칙이듯, 논술(축구)과 작문(배구)은 '문장기술법', 즉 룰이 다르다는 얘기다.

작문(시.소설.에세이 등등)을 쓰는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형식미학(문체)이 있어야 진정한 스타일리스트, 즉 예술가다. 그 때문에 모든 작가에게 똑같은 문체(문장규칙)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논술은 기본적인 형식의 룰이 따로 엄격하게 있다.

논술규칙의 정석 몇 개만 들어보자.

①일인칭 주어(나)를 쓰지 않는다. ②문장은 존경어미(…합니다,…하세요)가 아니라, 평서형 어미(…다)로 끝낸다. ③말줄임표(…) 느낌표(!) 쉼표(,) 물음표(?)를 자제한다. ④'…인 것 같다, …일까, …이겠지' 등의 추측투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은 논술과 작문을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장 흔한 예가 바로 논술문에서 '나는 …라고 주장(생각)한다'라고 쓰는 거다. 첨삭지도를 몇 번씩이나 해줘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심지어 '나'의 주장임을 더 강한 어조로 논술하는 테크닉이라고 생떼 부리는 아이도 있다.

논술은 쓰는 사람의 생각과 견해를 보여주는 주장 글이기 때문에 굳이 일인칭 주어를 쓰지 않아도 당연히 쓴 사람의 주장임을 다 안다. '나, 개똥이는 인터넷친구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를 '인터넷친구도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로 고치는 게 낫다. 신문 사설을 보자. '~일보는 무엇에 대해 …라고 주장(생각)한다!'라고 절대 쓰지 않는다. 몇 번씩 곱씹어 말해주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심지어 '내가 …라고 주장(생각)하면 엄마가 실망하지 않을까…!'라고 논술을 작문(일기)처럼 쓰는 어린이도 많다.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스포츠에 빗대어 좀 더 쉽게 풀자면, 축구(논술)를 하는 데 저글링(작문)의 룰에 따라 마음대로 손을 쓰거나 공을 여러 개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거다. 이 논술 ABC규칙부터 지키면 논술과 작문 사이에서, 논술 ABC의 비결을 터득한 셈이다.

노만수 학림논술아카데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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