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후임 총리, 내편 네편 따지지 말고 최선의 인물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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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선 행정부 내 서열 3위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사회봉을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데다 사퇴 압박을 받아 오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정부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어제 두 번째 방문지인 페루에서 “이 일로 국정이 흔들리지 않고 국론분열과 경제살리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각과 비서실은 철저히 업무에 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국정 수행이 차질 없게 이뤄지려면 신속한 후임 총리 지명으로 공백과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박 대통령의 귀국(27일) 이전이라도 후임자를 발표한다는 각오로 인선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경제살리기와 공무원 연금 개혁·노동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

 문제는 누구를 시키느냐에 달렸다. 후임 총리 인선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덕목은 도덕성이다. 따지고 보면 이 총리가 사건 발생 12일 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느냐는 실체적·법리적 문제보다는 정직성의 결여가 결정타였다. 이 총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드러날 거짓말을 밥먹듯 하다가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었다. 이를 지적하는 의원 질의에 “충청도 말투가 원래 그렇다”는 상식 이하의 변명을 늘어놓아 총리로서의 품격과 권위도 지키지 못했다.

 높은 도덕성과 함께 요구되는 자질은 개혁성이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 스캔들은 더 이상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적폐가 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흐름과 민심의 변화를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과거를 따지지 말고 진영을 무시하는 새로운 인사의 기준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찾아서 과감하게 기용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야당에도 총리후보자 천거를 요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여야 합의의 정치를 하자”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는가. ‘수첩’을 덮고 야당도 인정할 만한 인재를 구한다면 도덕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일각에선 후임 총리 인선을 놓고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친박계 현역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이는 “우리끼리 뭉쳐서 잘해보겠다”는 식의, 절대로 해선 안 될 인사다. 다시 한번 패가망신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다. 진영을 초월해 최선의 인물을 기용하고, 상당한 권한을 준다면 박근혜 정부가 위기를 돌파하고,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도 원활해질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할 여유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후임 총리 인선에 임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