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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한 접시에 담아낸 이적의 음악 뷔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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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어머니는 말했죠 / 저기 멀리 서쪽 끝에 숲이 있단다/ 그곳에서 나무가 새가 되어 해질 무렵 넘실대며 지평선 너머로 날아오른단다/ 오- 내 어머니 오- 난 가지 못했죠/ 오- 난 여기서 언젠가 언덕을 넘어 떠나고 말리라 노래를 부르죠 /커갈수록 사람들은 말했죠 어디에도 서쪽숲 같은 건 없단다 …." (이적의 노래 '서쪽숲' 중에서)

아마도 직접 가사를 쓰는 이적(29)의 장점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남들이 무심해 하거나 다 잊어버린 체하는 그런 얘기들을, 문득 선명한 기억처럼 끄집어내 이야기하는 것. 그의 그런 노래는 풋풋하지만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고, 자조적이지만 그렇다고 침울하지도 않다.

김진표와 함께 했던 '패닉' 시절, '달팽이'와 '왼손잡이' 등의 노래가 준 느낌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꾸밈없는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부르는 '서쪽숲'은 이 적의 개성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그가 2집 솔로 앨범 '2적'을 들고 돌아왔다. 28개월간의 공익근무를 마감하자마자 음반 한 장을 들고 팬들을 찾은 것이다. 욕심쟁이다. 공익근무를 하느라 팬들과 멀어진 그 시간을 헛되이 놓치지 않으려 계속 작업을 해온 것이다.

그의 홈페이지 '이적닷컴'(www.leejuck.com) 역시 그의 야무진 면을 엿보게 한다. 한 평범한 젊은이의 일기장처럼 그가 책읽고, 영화보고, 여행하며 느낀 단상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1년 가량 운영한 홈페이지 회원이 4만명을 헤아린다. 놀라운 마력이다. "홈페이지가 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끈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오히려 팬들이 올려놓은 글과 사진, 그림을 보며 배운 게 적잖다"고 말한다.

각 곡에 쏟아부은 노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30여곡 중에 고르고 또 골라 11곡(열두번째 곡은 보너스)을 수록했어요. 그러니 저로선 모두 각별한 애정이 느껴지죠. 이전 노래가 평면적이었다면 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곡들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설명이다.

'하늘을 달리다'와 '그땐 미처 몰랐지''바다를 찾아서' 등의 곡에서 리듬감과 중량감이 절묘하게 어울린 모던 록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런가 하면 반전 메시지를 담아낸 '장난감 전쟁', '자우림'의 김윤아와 함께 듀오로 부른 '어느날'은 조금 더 어둡고 무겁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 펑키한 분위기의 곡 등 다른 노래를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패닉'과 '카니발''긱스'를 통해 보여준 그의 다양한 색깔을 한꺼번에 접하는 느낌이다.

"패닉이나 카니발, 긱스에 모두 이적이 있었듯이 이번 앨범에 패닉, 카니발, 긱스가 조금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모두 제가 함께 한 음악들이니까요."

이번에 음반을 들은 이들은 첫 곡인 '몽상적'(夢想笛)이 가진 실험적인 분위기에 놀랄 만하다. 안숙선 소리부터 테크노까지 다양한 보이스 샘플이 합성된 이 곡은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음반으로 들어가는 통로"란다.

이번 앨범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 어쿠스틱 기타.피아노 연주와 프로듀싱을 도맡았고, 남다른 욕심에 긱스 시절부터 함께 한 연주자 정재일, 리듬프로그래머 이성훈, '패닉'시절의 단짝인 김진표까지 작업에 끌어들였다.

"음악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아직 너무나 많다"는 그는 "김진표와 함께 다시 뭉쳐 '패닉'으로 팬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자 길을 걸어 성숙해진 모던 록과 힙합을 '재미있게' 결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새롭게 생겼단다.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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