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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규탄이 아니라 인권상황 알리자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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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핵 문제에 이어 북한 인권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는 북한인권 문제의 세계화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이 대회의 이인호 공동 대회장(명지대 석좌교수)을 9일 오전 만났다.

-대회가 열린 경위와 의미를 설명해 달라.

"북한 돕기 운동을 하는 NGO는 많지만 인권 관련 국제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러다 7월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첫 북한인권국제대회를 워싱턴에서 주최했고 이어 한국 NGO가 이번 대회를 주관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예산은 해외 인사 참가 비용에만 지원됐고 행사와 관련된 나머지는 한국이 맡았다. 대회의 목적은 북한 규탄이 아니라 북한 인권 상황을 알리자는 것이었다."

-북한 인권 사태는 오래된 문제인데 이 대회가 그 문제를 새삼 정치화하는 것 아닌가.

"북한 인권은 정치적 자유가 아닌,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의 생존권 차원의 문제다. 굶어 죽을 지경이 되면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게 당연하고, 나라가 못 먹여 살리면 다른 곳에라도 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잡아 정치범 취급하고 있다. 굶어 죽지 않을 대안을 마련할 자유를 주는 것은 정치체제 이전의 문제다. 압력을 통해서라도 그런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문제 삼는 것이다."

-남북은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북한 인권을 압박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체제를 재단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실상을 제대로 모른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반공을 이유로 북한 정보가 통제됐지만 지금은 통합을 위해 적대의식을 버렸는데도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에 북한의 실상을 잘 알아야 뭘 할 것인지 알 수 있다. 인권 논의는 그중 하나다."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남한 사회도 북한의 실상을 많이 알지 않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탈북자의 증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우리는 분단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었고, 빨리 통일돼야 한다는 염원이 너무 강해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현실 기피증에 빠져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북한 인권보다 우선한다고 하는 이른바 일부 진보단체의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평화는 중요하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러나 인권문제 제기가 핵문제 해결이나 평화 통일에 방해가 될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이 가는 것이다.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이질적인 것을 알고 극복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 북한의 참상은 물질적 빈곤과 정치적 억압체제가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그 구조를 풀어야만 북한이 정상사회로 갈 수 있다.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정상적 체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인권을 제기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남한도 보안법 등의 문제가 있어 북한 인권만 비난할 수 없다고 하고, 압박보다 교류를 통해 북한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고 한다.

"남북 인권 비교는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정치적 권리와 탄압을 말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 이전의 기본적 생존권의 문제다. 남한에서 정치 활동을 이유로, 아이가 말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부모가 수용소에 가는 일이 있나. 남한에서 정치적 이유로 무고하게 탄압받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높은 수준의 인권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남북 갈등이 심화되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입장이 어렵다. 그러나 국민이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이 널리 알려졌는데 우리가 외면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또 필요한 갈등은 피해선 안 된다. 인권 문제를 제기해도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 인권을 비판해도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 긴장이 심화되면 어떤 형태든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감내하지 않겠다면 통일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어떻게 아무 대가 없이 통일하겠다는 것인가. 체제를 반으로 나눠 통일하거나, 우리 인권이 100인데 북한이 이에 못 미친다고 50 수준의 인권으로 통일할 수는 없다. 북한을 건드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남의 나라 눈치를 보고 사나. 대회장에서 '우리 문제인데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외국이 대신하게 돼 부끄럽다'고 했다."

-북한 인권 비판이 궁극적으론 체제 붕괴를 노리는 대결주의적인 것이란 지적도 있다.

"체제는 인권 문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붕괴한다. 김정일 정권을 유지해도 억압하는 방식을 고친다면 인권은 개선될 수 있다. 북한이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문제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나. 남북경협과 인권 문제의 연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방법은 국내외 논의를 광범하게 수렴해 마련해야 한다. 다만 대화의 물꼬를 막지 않는 선에서 경협과 인권의 연계는 필요하다. 남북교류가 줄긴 하겠지만 무조건 지원한다고 북한 체제가 열리지 않는 것을 보지 않았나. 남북 정상회담 때 국민은 크게 기대했다. 묻지 않고 지원해주면 북한도 개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핵으로 우리를 압박했다."

-다시 대회로 돌아가 보자. 참석한 해외 인사들의 목소리가 강경했다. 그들이 한반도 현실을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가 그런 말을 들어야 논리도 개발하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리 싫어도 상대 말을 듣고 왜 그러는지를 알아야 한다. 북한도 중요하지만 외국도 중요하다."

-인권 문제가 북한 주민을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고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나.

"강제 북송돼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려다 중국 국경지역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방송하는 것을 듣고 희망을 얻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 자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고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인권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만난 사람=안성규 정치부 차장

정리=백일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이인호 교수는

현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주 핀란드 대사(1996~98년)와 주 러시아 대사(98~2000년) 등 한국 최초의 여성대사를 지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2000~2003년)을 지냈으며 2004년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가 주는 제1회 '한국여성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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