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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지방 분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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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정부가 마련한 지방문화 진흥종합시책은 서울에만 편중돼 있는 문화의 비만현상을 타개하는 구체적인 실마리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광복 이후 수십년동안 계속된 결과 우리의 정치·경제·교육은 물론 문화 역시 중앙 집중 현상만 심화됐고 이는 곧 지방문화의 소외와 침체를 가속화했다. 이번 시책이 그동안 구두선으로 그쳤던 「지방문화육성」이 아닌 지방문화육성 5개년(84∼88년) 계획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라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정부의 계획을 보면 이 기간중 1천억원을 투입해 서울을 제외한 12개시·도에 교향악단 1개씩을 두도록하고 종합 예술회관 및 특장예술 전문시설을 건립하며 지역별 각종 예술행사의 품격을 격상시키도록 돼 있다.
특히 교향악단의 경우는 현재 이러한 단체가 없는 강원·경남·제주도는 85년까지 교향악단을 창단하며 나머지 지역의 기존 교향악단은 단원과 악기를 보강하여 본격적인 면모를 갖춘다는 것이다.
현재 시립교향악단을 가진 지방은 인천·부산·대구·광주·전주·대전·목포 등이다. 이들 지방교향악단 중에는 오랜 역사와 서울원정 연주회를 가질 만큼 수준이 높은 단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연주자가 부족하여 연주회 때마다 주자를 모아 겨우 연주회를 갖는 고충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16개의 교향악단이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갖고 있으나 이중 대부분의 지방교향악단은 수군 이하의 봉급을 지급하고 있어 실력 있는 단원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교향악단의 봉급수준이 이처럼 낮은 것은 시에 소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 예산이 부문에 책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술인으로서 향토문화 발전에 대한 애착이 크더라도 배를 곯아가며 애향심만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참여가 단절되는 큰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발표의 기회와 장소의 부족은 지방민의 예술애용 수준을 떨어 뜨리고 이것은 다시 예술인의 지방이탈, 중앙집중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하면서 지방문화의 침체 내지 부재현상을 빚어온 것이다. 지방문화의 실질적인 육성에는 무엇보다도 재정적 뒷 받침이 우선해야만 한다는 얘기이다.
정부는 이번 5개년 시책에 1천억원을 투입키로 하고 그 재원은 단기성 사업은 금년 추경예산에서 사업비를 확보하고 회관건립등 소요예산은 방송공사 광고수입과 문예진흥원 지원 금 및 지방비로 충당하기로 되었다 한다. 지방 행정기관 재경이 빈약하다는 현실로 미루어 보아 결국 중앙에서 보내주는 지참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방문화의 진흥이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한계는 명백한 것이다.
지방 주민들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의지와 합심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시혜하는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받아먹기 식의 시책이 활성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서울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 전 인구의 4분의1 이상이 서울에만 모여 사는 원인이 그러하듯 문화의 중앙 비대도 행정의 지방자치가 극도로 제한 받고 있는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새로 탄생되는 지방 문화단체와 시설, 제도들에 대해 우리가 두손을 들어 환영하면서도 일말의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요란한 시작의 팡파르와 걸맞게 지속적으로 내실 있게 유지 관리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지방자치제도의 뒷받침이 없다는 점이다.
문화의 지방 분권화가 오히려 지방자치를 선도하는 현실이 아이러니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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