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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리 아파트 한 곁에 자연림이 ㄱ자형으로 둘러진채 계절이 안겨주는 변화를 민감히 선보여 준다.
이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농경지였고, 이런 까닭에선지 야산중에는 농사를 짓던 원주민들이 비옥한 농토와 풍성한 수확을 얻기위해 쌓아둔 퇴비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적당히 썩고 분해되어 검은색 기름진 옥토를 만들고 있다.
어제저녁 지난 봄, 이공터의 흙을 퍼다 성공적인 분갈이를 마쳤던 현이 엄마가 또 다시 분갈이를 계획했는지 야산으로 흙을 파러 간단다. 재빨리 비닐봉투 2개를 준비하고 졸음이와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고 현이 엄마를 뒤따랐다. 가쁜 숨을 내쉬며 야산 그 장소에 도착했을때 놀라운 광경이 우릴 기다린다.
두 서너군데 손바닥 만한 크기로 땅이 일궈져 있고, 가장자리엔 돌담이 쳐져있으며, 흙 위엔 퇴비 거름 몇덩이가 덮여 있고 아마 누군가가 옥토인 이 곳을 공한지로 생각하고 정성들여 호미질하여 밭을 만들어 놓고 씨를 뿌렸나보다. 왠지 이런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한치의 땅이라도 개간하여 곡식을 심어놓고 무심히 지나칠 행인들의 발길에 돌담을 둘러 주의를 요하는 이분의 세심함은 아무 불평없이 흙과 땅에 온정열과 애정을 기울이며 묵묵히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내친정 어버이의 소박한 마음과 우직한 마음이 아닐는지?
야산중에 손바닥만한 밭을 일궈놓으신 그 어떤 분이나, 한섬지기 힘들게 농사지으시는 우리 부모님께나 봄햇살이 골고루 내리쬐고, 적당량의 비가 내려 올해 역시 풍년이 기약되길 빌어보면서 조심스레 흙을 파내 어둠이 찾아드는 산을 내려왔다. <경기도시흥군과천 주공아파트220동4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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