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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박 대통령·아베, 국제무대서 자주 만나면 문제 풀릴 것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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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 08면

최정동 기자

-양국 지도자들이 위안부 문제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정치적 이유는 어디에 있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역사수정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당시에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수긍하면서 지지층의 반발을 샀다. 2012년 두 번째로 총리가 돼서는 두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때문에 한국이 강하게 반발했으며 아베 총리는 일본 국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충돌로 이어져 한·일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고 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총리로서 아베는 대외적인 비판을 무시할 수 없기에 결국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할 만큼 했다고 할 수 있는 두 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의 발족 등으로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적절한 대응인지를 놓고 아베 총리는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힌 느낌이 든다.
“내셔널리즘은 국민국가라는 틀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정치적 조류다.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만들자는 의지에서 저항적 내셔널리즘이 생겨났다. 반대로 공산주의 국가들은 인터내셔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원리를 국제정치 속에서 주창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1990년에 종지부를 찍고 공산주의적 인터내셔널리즘이 사라지게 되면서 내셔널리즘이 강해지게 됐다. 최근에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리즘에 대항하는 이슬람국가를 중심으로 내셔널리즘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터내셔널리즘과 내셔널리즘이 이원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내셔널리즘을 존중하면서도 억제하는가에 있다. 이러한 태도가 어느 국가, 어느 민족에게나 필요하다.”

-위안부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수순을 조언한다면.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에 사죄 의지를 담아 표명하고 민간의 모금을 통해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로서는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모금하는 데 대한 비판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200여 명 중 60명에게만 기금이 지급되고 중단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지고, 법적 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오랫동안 이러한 주장을 펴왔던 정대협은 2014년 6월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새로운 해결안을 제시했다. 위안소를 일본군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노예로 끌려갔으며, 이게 인권침해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의 표시로서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이 제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요구 내용은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사실상 인정해 온 내용이며 일본 정부가 기금을 직접 조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베 총리가 이러한 해결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인종청소 나치와 일본은 달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죄와 보상에 대해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독일과 비교하는 데 대해 일본인으로서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인종말살하려 한 것은 명백한 범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 독일은 철저한 사죄의 노력을 줄곧 보여왔다. 이에 비해 일본이 행한 행위는 전쟁과 식민지 지배였다. 식민지로 지배했던 한국과 한국인을 이용해 전쟁을 했다. 2500만 명이라는 한국인을 일본이라는 나라의 군인으로 만들었다. 일본과 한국 양국의 1억 명 국민이 중국·미국과 전쟁을 했다. 인종말살과는 달랐다. 한국인을 마치 일본인인 것처럼 이용해 죄를 범한 것이다. 한국인은 전쟁에 이용당했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점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 심리적·문화적·정치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죄와 화해를 이끌어내야 한다. 일본과 한국 관계에서의 사죄 방식에는 ‘식민지 국가에 대한 사죄’라는 보편성이 있다. 세계사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교훈을 남길 것이다. 독일의 경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반일 정서가, 일본에선 반한 정서가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깊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시민사회의 분위기는 어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98년 10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한국에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고, 일본에선 한류 붐을 타고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본인 대다수는 한·일 관계의 개선을 환영했으며 한국에 대한 인식도 그간의 식민지 국가에 대한 비하적인 관점에서 한국 문화를 이해하자는 쪽으로 흘렀다. 제대로 된 사죄를 해야 한다는 데 일본 국민의 50% 이상이 동의했다. 그러나 미해결의 위안부 문제가 대두되면서 한·일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반성을 강요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표면 위로 나타난 것이다.”

-민감한 이슈인 과거사·영토 문제와 일반적인 안보·경제·문화 문제는 분리해서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렵다고 본다. 안보·관광·비즈니스·대북정책 협력이 가능은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립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교 50주년 한·일, 공동 노력 기울여야
-연내 한·일 또는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여러 계기를 통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국제무대에서 접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만남을 통해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촉구하면 아베 총리도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향한 첫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는 29일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의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될 예정인 ‘아베 담화’도 주목되고 있다. 어떤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예상하나.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계승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는 문구가 포함될지는 모르겠다. 이제까지의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태도이니 넣기 싫다는 입장일 수 있다. 그러나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이니 그 조치를 전제로 담화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미 의회 연설 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을 텐데 어떤 대답을 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일 수교 50주년인 올해를 놓치면 양국 간 화해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바라는 점은.
“일본은 65년 수교조약 체결 당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50년의 양국 협력관계에서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하고 양국 관계를 개선하자는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공동 파트너십도 체결된 것이다. 이를 다시 확인하려면 65년에는 다루지 않았던 영토 문제에 대한 협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수교 50년을 계기로 어떤 결실을 이끌어 내기는 힘들 것이다.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양국 국민이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시작되는 해가 됐으면 한다.”

정리=중앙일보 글로벌협력팀 한예린



2011년 8월 한국 헌재 위안부 판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이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와 소장을 지냈다. 소련사와 남북한 현대사에 정통한 역사학자다. 아시아여성기금 운영에 참여했으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일본의 대표적인 행동파 지성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파로부터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한국전쟁』 『북조선-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6』『북한 현대사』 등.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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