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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가난의 또 다른 이름 '소년병' 누가 이들을 전쟁터로 몰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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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사담 소년단(SADDAM’S CUBS)’의 소년병들이 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소년병
마이클 웨셀스 지음
이상근 옮김, 세리프
408쪽, 1만4800원

전쟁은 비극이다. 어른들에게도 끔찍한 경험이다. 하물며 자라고 있는 청소년이야 오죽할까.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일이 공공연하다. 인권단체 등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30만 명 이상의 청소년이 ‘소년병’으로 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보호받고 교육받아야 할 이들의 고사리 손에 총을 쥐여주고 전쟁터로 내몰거나 병영의 노예로 착취하는 일은 그야말로 도도한 탁류다. 20세기 후반부터 분쟁이 일어난 거의 모든 곳에서 소년병을 선호해왔다. 아직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어 지시나 강요에 따라 얼마든지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AK-47 같은 가볍고 다루기 쉬운 무기들이 등장하면서 소년·소녀들도 얼마든지 살육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오랜 훈련과 경험을 자랑하는 비싼 전사보다 말 한마디에 죄의식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값싼 소년병이 더 선호됐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심리학 교수로 전쟁과 정치적 폭력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필자는 이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앙골라·코소보·우간다·시에라리온·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7~18세의 소년·소녀 병사 400명 이상을 만나 면담했다. 이 책은 이를 통해 파악한 비극적 실체와 이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다뤘다.

 연구결과는 충격적이다. 흔히 소년병이 생기는 원인을 이들을 강제로 잡아가 병사로 키우는 사악한 사람 때문이라고 여겨왔지만 실체는 달랐다. 이들은 단순한 납치 피해자가 아니었다. 전쟁이 만든 구조적인 피해자였다. 먹고 살기 위해,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자신이 당하지 않기 위해 자원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납치 피해자도 소년병 외에 달리 살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빈곤은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가장 적나라하게 증명되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가난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다시 가난을 확대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전쟁이 끝나도 가난은 다시 불안을 잉태한다. 전쟁은 부모도, 고향도, 먹을 것도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취약지대에선 언제든 다시 연기가 날 수 있다. 소년병이 다시 총을 들게 되는 환경은 무한 반복될 수 있다.

 지은이는 소년병들을 ‘파괴된 영혼’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행복이 송두리째 파괴된 사람이다. 따라서 이들을 병영에서 데려와 민간사회로 돌려보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심리적 상처를 어루만지고, 도덕성을 회복시켜주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인간성을 되살리는 교육을 거쳐야 사회에 제대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복원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갖추고 애정 어린 손길로 다독이면 사회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소년병 양산의 궁극적인 원인인 분쟁과 가난을 줄이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은이의 주장이 울림을 준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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