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와 공무원의 재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대국가에서 행정이 국민의 변익위주가 되어야함은 상식이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받는 공무원들은 그 댓가로 국민의 편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되어있다. 그들을 공복이라 부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치가 잘 통용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인허가업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인허가에 관한 행정관청의 권한은 이론적으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무슨 고유의 권한인양 여겨 문제를 일으키고 민원의 대상이 되는 일을 우리는 얼마든지 알고 있다.
뿐더러 공무원들에게 주어진 재량의 폭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부정의 소지가 넓다는 것을뜻한다. 따라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이현령비현령식의 재량권을 제한하는 일을 비롯해서 제도적인 규제는 필요하다.
정부가 각종 인허가요건을 민원관계법령·규칙에 명백히 규정, 민원처리에 있어 담당공무원의 자의적 재량의 여지를 없애기로 한 것은 그런 뜻에서 때늦은 감마저 드는 적절한 조치다.
인허가관계공무원들의 불친절하고 공복으로서 떳떳지못한 자세가 공직사회, 나아가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신원인의 하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들어 민원창구가 대민봉사기관으로서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아직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국민의 생업과 관계되는 인허가사무와 관련해서도 담당공무원들이 과거와는 달리 아주 깨끗해졌다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자그대로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옳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해주는 일이다.
3년전 정부는 국민부담을 줄이고 민원행정의 제도적 개선을 위해 인허가관계법률을 정비한바 있다. 하숙업허가제와 공연관람료신고제를 폐지하고 목욕탕시설변경 및 해외인력송출을 신고제로 하는 것등이 그 내용이었다.
역대정권이 그처럼 고창한 민원행정의 개선이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국민들의 생활양식과 의식의 급격한 변화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민원관계법률·법령의 정비가 그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임을 말해준다.
인허가업무를 행정관서의 재량행위적 성격에서 벗어나 법령·규칙에 규정된 요건만 갖추면 자동적으로 처리되는 굉속행위의 성격을 띠도록하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기대를 걸면서도 그런 기대가 충족될지 일말의 불안을 느끼느 것도 그 때문이다.
인허가업무에 관한 세부사항을 규정, 사안의 처리결과를 명백히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는 착상은 물론 좋다. 그러나 첫술에 배가 부를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인허가제도는 부단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 그 자체보다 제도가 규정대로 잘 지켜지는지를 철저히 점검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