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선진국 무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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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무역회의는 비록 그 규모가 작고 어떤 구체적인 합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해도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회의임에 틀림없다.
이 작은 모임은 참가자들이 기대하듯이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의 모색을 위한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회의의 주제가 암시하듯 국제무역에서의 개발도상국들의 보다 큰 책임을 부각시키려는 선진국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회의에 참가한 동남아개도국과 함께 수세의 입장에 몰릴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대미 컬러TV 덤핑판정을 비롯하여 대선진국 수출이 곳곳에서 장벽에 부닥치고 있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이런 기회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국제무역의 안정적 확대를 위해 우리가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독자적인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설득하는 좋은 기회가 될수 있다.
회의에 참가한 선진국들은 아마도 한국을 비롯한 이른바 신흥공업국들이 세계무역의 안정과 확대를 위해 보다 큰 책임과 기여를 맡도록 촉구할 것이고, 그것은 보다 공정하고 질서 있는 무역의 실천과 개도국의 개방화 촉구로 구체화되어 제기될 것이 분명하다.
전자의 보다 절도 있고 공정한 무역질서의 확립에는 공업국이나 개도국 할것 없이 책임의 일단이 있고 서로 협력할 소지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절도와 공정이 어느 수준에서 확보되는지에 대해서는 양쪽의 견해가 너무도 다르다. 70년대후반이후 세계경기가 장기침체에 빠져들면서 선진국들은 잇달아 경제운영의 실패를 경험했고 그것을 보호장벽의 강화로 은폐시키려해온 결과 세계무역의 침체는 물론 무역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GATT의 기반을 지탱해온 무차별적 일반원칙들은 거의 외면된채 차별적, 쌍무적 장벽들이 자의적으로 구축되었다.
GATT를 빙자한 GATT정신의 외면은 세계무역에 현존하는 가장 큰 역설이 아닐수 없다.선진국들은 이런 자기모순을 중진·개도국규제의 공동보조로 은폐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세계경제의 전반적 회복이 없이는 당분간은 세계무역의 순조로운 신장이나 안정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오는 5월의 워싱턴무역회의나 6월의 경제정상회담 또는 그 이후에도 지속될 일련의 협의등이 순조로운 합의를 얻어낼 가능성은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또 하나의 현안과제인 선진공업국들의 대 개도국개방압력 조차도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무역의 안정과 확대 없이는 개도국들의 성장과 국제수지해결이 어렵고 그것 없이는 개도국들의 개방화나 보다 큰 책임의 분담도 벽에 부닥칠 뿐이다.
이번 회의는 이런 현실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되어 양측의 이해가 한발짝씩이라도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면 성공적일 수 있다. 이같은 기반의 구축없이는 선진국들이 요구하는 물질특허나 그밖의 일련의 첨단기술·서비스의 보호도 무의미하고 일방적인 개도국들의 부담으로끝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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