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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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4월1일.
밤 11시에 전화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어보니 남편의 직장에서 온 전화였다.
『이민구씨 댁이죠, 태우아빠 계세요… 』
직장에서 비상소집을 발령했으니 급히 출동하라는 전갈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사고가 났나?
공무원인 남편에겐 가끔 비상연락망을 통해 느닷없이 전화가 오곤 한다.
새벽에도 올 때가 있고, 한밤중에도, 그리고 초저녁에도 온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또 전화가 오면 직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하라며 허겁지겁 직장으로 뛰어간다.
『여보세요, 집에 안 계신데요 어떡하죠, 누구신데요?』
전화가 찰칵 끊어졌다.
남편은 이 지역에 살며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직원의 비상연락망 책임자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행선지를 알려주고 외출하며, 장소가 바뀔 때마다 꼭꼭 집으로 연락하기 때문에 비상시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당숙부님 제사로 조카 집에 가고 없으니, 전화도 없는 시골인데다 먼길이라 달려갈 수도 없고 안절부절못하다 살펴보니 책상벽에 비상 연락망 명단과,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급한 김에 차례대로 다이얼을 돌려 무려 열두 집을 통화하고 숙모님집으로 허둥지둥 뛰어갔다.
길이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집에 와보니 어느새 돌아온 아빠가 계속 전화를 받으며 상기된 얼굴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니 여보, 빨리 직장으로 가봐요.』다그쳐 얘기하자,『우리 모두 당했어 오늘이 4월 바보, 만우절이잖아 당신 수고 많이 했소 덕분에 비상 연락망 점검 한번 잘했지.』하며 껄껄 웃는다.<최기순 경기도 부천시 소사동 93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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