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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검찰의 존재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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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방검찰청의 A검사는 "분노와 허탈감을 주체하기 어렵다. 이제 옷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울분을 토했다. 직을 걸고 정치권과 맞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재경지검의 B검사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반대했던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예를 들며 "검찰총장이 전임자처럼 명예를 소중히 하시리라 믿는다"고 정상명 총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검찰 내부통신망에도 검사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법률가로서 점잖지 못하고, 거친 표현들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검사로서의 위상과 존재가치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만큼 검사들의 심정은 절박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된 데는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경찰이 일부 사건에서 독립적인 수사권을 달라고 할 때 검찰은 시간을 끌며 외면했다. '수사 주체로서의 경찰'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부분의 사건수사를 경찰에 넘기고 수사지휘권마저 빼앗기는 처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누구의 탓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업보"라며 자성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C검사는 "억지 자백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사건 피해자의 억울함에 귀를 막지 않았는지 반성하자"고 했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을 '기득권 지키기'로 평가절하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검찰의 존재이유는 만의 하나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여당안은 경찰 수사에 검찰의 개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대검의 한 검사는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 경찰 수사의 억울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느냐"며 "신중한 수사는 경찰이 주장하는 신속한 수사 못지않게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국민을 상대로 검찰의 존재와 가치를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종문 사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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