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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은 아직도 9개월째 '공사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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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굴삭기의 굉음, 흙을 실어나르는 트럭의 행렬, 무너진 제방을 쌓는 분주한 손놀림….

김천시를 관통하는 감천변 곳곳에서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상흔을 지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엄청난 수재여서 복구도 쉽지 않다. 폭우가 쏟아진 것은 지난해 8월 31일. 9개월 가까이 계속된 복구에도 상처는 여전했다. 장마철이 다가오면서 불안감도 다시 커지고 있다.

◇수해 현장은 지금=지난 23일 오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감천변에 세워진 10여동의 임시 주거용 컨테이너엔 버려진 신발과 가재도구만 널려 있었다. 집이 사라지면서 희망마저 잃었던 주민들은 새 둥지를 마련해 떠났다.

마을도 깨끗하게 정리됐다. 집집마다 높이 2m로 물이 들어차면서 진흙으로 범벅이 된 곳이다. 주민들은 “겉보기엔 깨끗하지만 아직 멀었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동네 앞 감천 바닥엔 여전히 흙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다.

감천이 역류하면서 물난리를 겪은 도심의 황금동엔 수해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육중한 하행선 교각 두개가 떠내려간 경부선 철도 감천철교도 완전 복구됐다. 교각이 떠내려가면서 선로 50여m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수해의 참상을 말하던 곳이다. 복구를 맡은 쌍용건설의 한 직원은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돼 현장사무소를 철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차가 복구된 철교 위를 힘차게 질주했다.

이빨 빠진 듯 휑하니 뚫렸던 인근 감천둑 1백여m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철망에 돌을 넣어 둑안을 보강하는 작업은 진행중이다.

황금동 주민 이선택(63)씨는 “폭우때 쓸려온 토사가 쌓여 감천 바닥이 1m 정도 높아졌다”며 “장마철에 강물이 다시 넘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도 3호선을 따라 대덕면쪽(감천 상류)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참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감천 바닥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하천마다 수많은 굴삭기와 트럭들이 오가며 강바닥의 흙을 파내 사라진 제방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 막 둑 형태를 갖추는 곳이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둑이 아니라 모래흙을 쌓은 정도”라며 “다시 폭우라도 쏟아지면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새로 만드는 둑 바깥쪽에는 예전처럼 논·밭이 만들어졌지만 아직 황토밭이다. 마을마다 저수지의 물이 말라 모내기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1천5백여평에 벼농사를 짓는다는 김맹규(71)씨는 “마을마다 물을 가두는 보(洑)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농사짓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3번 국도가 유실돼 한동안 고립됐던 대덕면의 입구는 여전히 막혀 있었다. 하천 바닥으로 난 임시도로로 차량들이 오가고 있다. 강물이 불어나면 다시 길이 막힐 판이다. 구성면 미평리 등 국도와 강 건너 마을을 잇는 다리도 대부분 교각을 만드는 중이어서 장마철 또다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김천 도심에서 대덕면을 잇는 감천 주변 곳곳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주민들은 “언제쯤 수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라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복구 왜 늦나=김천시는 농경지와 주택은 복구작업이 끝났고, 다리·도로·하천·수리시설 등 공공시설은 1천8백62건 가운데 7백90건의 복구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나머지의 진척도도 70%에 이른다고 했다. 하지만 상당수 사업은 공기가 길어 7월 이전까지 1백%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수해지역이 워낙 넓어 레미콘과 골재·트럭·굴삭기 등 건설자재와 장비 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인력난도 겹쳤다. 더 큰 문제는 4월 이후 비가 잦아 작업이 지지부진했다는 것이다.

김천시 김장대 방재담당은 “작업에 박차를 가해 다음달 말까지 주요 시설물 복구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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