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안내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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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랜만에 서울에 갈수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울살림을 하고있는 동생집에 머물면서 이곳저곳 볼일일 마치고 귀가하기 하루 전날 국민학생 두 꾜마를 위해 읽을 만한 동화책이라도 몇권 사주고 내책도 몇권 고르기 위해서 종로로 나갔다.
서울 지리에 밝지못한 나를 염려한 동생은 어느 곳에서 몇번 버스를 타고 돌아올때는 또 무슨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리라는 등 자세히 가르쳐 주더니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집안일을 대충 끝내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서점에 가면 보통 서너시간을 보내는 내 평소습관이라 동생에게 미안할 것 같았고 오랜만에 큰 서점에 가서 실컷 눈요기라도 해야겠다는 계산에 왕복시간을 5시간 정도로 넉넉잡고 하오 1시에 바로 출발하였다.
J서걱 2층에 올라가서 먼저 애들의 책을 몇권 사서 미리 챙겨놓고 서서히 신간서적부터 차례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평소 사고싶은 책이 많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해서 고르는 시간이 꽤나걸렸고 사지못한 책이나마 제목만이라도 훑어보려는 기쁨을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하오 6시가 훨씬 지나고 있었다. 서둘러 나와 곧 버스를 탔다.
한참후 밖을 내다보니 낯선 곳이 비춰왔다. 나는 그만 깜짝놀라 『아가씨 모래내 지났어요』하고문자 『네』하고 안내양이 나를 쳐다봤다.
『아이 어쩌나, 내려야겠는데』하니까 『어마! 아주머니 부탁을 깜박 잊었군요』하더니 따뜻한 손길이 내 손에 와 닿더니 토큰 1개를 꼬옥 쥐어주면서 『정말 미안해요. 건너가서 한정거장만 돌아가세요.』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내양의 고운 마음씀에 훈기를 느낀 때문인지 추위도 잊었다. 『빨리 내려욧!』짐짝 떠밀듯 잡아당기는 여차장의 우악스런 손길에 몇 번 놀란적이 있는지라 더욱 그 안내양의 친절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전남 완도군청산면신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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