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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8)제80화 한일회담(177)|미, 북송지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과 북한이 북송절차를 놓고 공방전을 벌이던 40여일간 중단됐던 북송 등록업무는 일본측의 굴복으로 곧 재개될 단계였다.
정부는 미국과 국적에 대해 일본측의 부당한 처사를 맹렬히 규탄하고 그것을 저지하려 했지만 아무런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했다.
미국은 오히려 우리의 북송 반대운동을 견제하는 행동마저 서슴지 않아 우리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미 국무성 대변인 「링컨·화이트」씨는 10월29일 일본의 북송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것이다. 「화이트」 대변인의 성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양유찬 주미대사의 정력적인 북송반대 활동에 기인했다.
양대사는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미국 의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북송이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수십만명의 자유인을 공산노예로 추방하는 비극적 음모라고 진상을 설명하고 그들의 동정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미국정부는 「화이트」 대변인의 논평형식을 통해 『일본측의 북송계획은 어느모로 보나 그들 재일 한국인들을 추방하려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임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고 선언해 우리측의 저지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국무성은 이 논평에서 일본측이 일본 국내에 있는 어떠한 한국인에게도 일본을 떠나 공산치하의 북한으로 가도록 강제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했다고 말하고 약 60만명에 달하는 재일 한국인 가운데 2백명만이 북한으로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순진하게 설명했다.
미국측은 조총련의 사보타지로 등록사무가 중단되고 있던 10월26일 현재 총2백57명의 북송등록자 중 51명이 자진 취하한 사실을 들어 그같이 말했으나 그렇게 된 배경과 앞으로 예견되는 사태진전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았던 것이다. 국무성은 더우기 한 외국대사가 미 의회와 국무성에 압력을 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에 대해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시사하기 조차 했다.
이 문제는 30일 국무성에서 열린 한미 외상회담에서도 제기됐다.
「크리스천·허터」 국무장관과 「그레이엄·파슨스」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는 조정환 외무장관과 양대사를 맞아 양대사의 서신호소 활동이 대사의 특권을 넘어선 행동이라고 정중하게 경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파슨스」 차관보는 양대사가 미 의회에 대한 호소활동을 통해 미국정책을 변경시키려 기도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며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으로 듣고 있다.
조장관은 귀국 후 어떤 사석에서 이같은 내용을 나에게 말하고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다』며 분개했다. 우리는 주한미국대사가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온 일을 회상하면서 하루 빨리 국력을 길러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날이 와야겠다는 소망을 했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한층 국력이 왜소함을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측의 이같은 공식태도가 국내에 전해지자 여야는 정파를 초월해 미국을 비난했는데 50년대에 이처럼 미국을 비난하기는 휴전협정 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일본측은 미국의 원호를 받은데다 국적도 대폭 완화한 절차를 승인함에 따라 순풍에 돛단 듯 11월3일 전국 3천6백55개소에서 북송 신청업무를 재개했다.
9월21일 처음 등록업무를 개시해 5일동안 2백50여명이 등록했던데 비해 재개된 첫 날의 등록자 수는 5천여명에 육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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