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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5)-제80화 한일회담(174) 김동조|이대통령의 호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59년9윌4일 경무대로 올라오라는 전갈을 받고 경무대현관으로 들어섰다. 현관에 막 들어서자 조정환외무장관과 홍진기법무장관이 나오고있었다.
조장관의 굳은 얼굴표정을 본순간 나는 뭔가 좋지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는데 홍장관이 나를 불러세웠다.
홍장관은 『이대통령이 김차관의 건의에 대해 대노하고 있으니 지금 들어가면 혼쭐이 날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나도 이즈음 분위기가 좋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무대의 전갈을 받고는 이대통령이 왜 올라오라는지 예감이 들어 그에 대비해 2통의 문서를 웃옷 안쪽호주머니에 각각 넣고왔다.
아니나 다르랴. 대통령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대통령은 노기띤 음성으로 힐책하기 시작했다.
『그대를 신임하고 모든 외무부일을 맡겼으며 자주불러 우리 외교문제를 의논했는데 내가 최근 보고받기로는 그대가 「대통령의 반일감정이 극심하여 한일회담이 안된다」고 말했다니 참 섭섭하기 짝이 없네.
나의 진의는 일인들의 혹독한 식민지정책으로 남부여대하여 북만주 등에 유랑하게됐고 일인이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해 일본의 공장·탄광 등에 끌어가 갖은 고생을 시킨 동포들을 고국이 광복되었으니 귀국해 가족들과 따뜻하게 내나라에서 지내도록 하자는것이었어.』
입맛이 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는 일국의 국가원수일뿐아니라 일제의 혹독한 압재를 맛본 노대통령을 나는 바라보기가 송구하기 짝이없었다.
그러나 나는 즉각 10여일 전부터 일어난 일련의 일을 상기치않을수 없었다. 동경에서는 재일교포에 관한 법적지위에 관한 본부의 지시를 독촉하고 경무대비서진에서는 이대통령지시라고 빨리 동경의 대표단에 훈령하라고 채근했던 것이다.
이대통령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다.
①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은 본국에 귀환해 조국에서 다시 살도록 할것. ②일본정부는 귀국하는 재일동포가 소유한 전재산을 가지고 귀국할수 있도록 조치하되 일본에 강제로 끌고간 보상금으로 1인당 1천달러씩 지급할 것. ③만일 귀국하지 않는 교포는 우리 국민이라 할수 없으니 이들을 우리 정부가 보호할책임이 없고 따라서 일인들이 맡아 처리할것.
나는 이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를 훈령으로 내보내는것을 한사코 반대했던것이다.
이미 건의문초안에서 보았듯이 많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반대이유를 서면으로 준비한것을 꺼내 이대통령에게 설명하는 한편 다시 외무부안도 거듭 말한후 『제가 각하의 지시를 반대한것이 아니라 각하의 지시를 따르면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있다는것을 말한것이 각하께 잘못 전해진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에 대해 이대통령은 『누가 나에게 찬반의견을 말하지 말라고했나. 그런 일은 없고 특히 요즘은 장관들도 반대의견을 말하는 이가 없어 딱하네. 그러나 세상에서 그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때는 좀 쉬는것이 좋으니 쉬도록 하게』하고 지시했다.
나는 즉시 『바로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말하고 접견실을 물러나왔다. 접견실을 나와 박찬일비서관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사표를 내겠다고 말한즉 좀 기다리라며 나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비서관에게 사직서을 맡기고 경무대를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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