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잃은 아이들, 사진 찍으며 마음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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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된 학생의 형제가 찍은 ‘쌍둥이의 바닷길’. 새 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처음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을 때 그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시든 풀을 찍어왔다. 거기에 담긴 마음은 ‘외로움, 쓸쓸함’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나처럼 힘들고 쓸쓸해 보여 찍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이 흘렀다. 이번엔 커다란 항아리에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사진을 가져왔다. ‘설렘’과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밝은 빛을 찾았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로 오빠를 잃은 이모(18)양 얘기다.

 형제자매를 잃은 청소년들은 한때 부모보다 더한 충격에 빠졌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소리 지르기도 했다. 이들 중 18명은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온마음센터)에서 지난해 가을 실시한 ‘사진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찍고 싶은 사진을 찍고, 거기에 어떤 마음이 담겼는지 서로 얘기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찍은 사진에는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마음이 꼬였다’는 뜻으로 끈이 묶인 운동화를 촬영하다가 나중엔 끈이 풀린 운동화를 찍었다.

 처음 찍어온 사진은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 일색이었다. 왜 그런 사진을 찍었는지 얘기하기를 꺼렸다. 그러다 서로 심경이 비슷한 것을 알게 되고는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한창우 온마음센터장은 “충격을 겪은 뒤 마음을 닫아놓는 게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일단 사진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그게 대화로 이어진 게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다른 청소년들의 사진도 이양과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언니를 떠나 보낸 전모(17)양은 처음 끈이 묶인 운동화를 찍다가 나중엔 끈이 풀린 신발을 촬영했다. “과거엔 꼬여 있던 모든 일이 이젠 풀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온마음센터는 청소년 18명이 찍은 사진을 모아 ‘토닥토닥 너풀너풀’이라는 사진전을 6월 28일까지 안산시 합동분향소 옆 경기도미술관 1층에서 열고 있다.

◆특별취재팀=임명수(팀장)·이찬호·전익진·최경호·최모란·최충일·최종권·김호·유명한 기자, 사진=최승식·강정현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 lm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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