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끈끈한 공격에 조용히 침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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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하이라이트>
○. 최철한 9단 ●. 조훈현 9단

현대 바둑은 정교함에서 하루에 몇 수씩 두던 옛날 바둑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불구덩이에 던지는 현대바둑의 맹렬한 승부 호흡은 옛날 바둑보다 몇 배나 가혹하고 사납다. 프로에서 은퇴한 속기의 명수 김희중 9단은 인터넷에서 '옛날 바둑'이란 아이디로 곧잘 바둑을 둔다. 여유를 뽐내며 특유의 유머와 함께 멋진 바둑을 구사하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장면1=조훈현 9단은 59, 61로 넘는다. 백 집을 부수며 좌변 흑을 안정시키는 유력한 수법이다. 문제는 백 60이다. 이 수가 귀를 위협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위협인가. 조 9단은 대단치 않다고 봤다. 하지만 최철한 9단은 여기서 꼬투리를 잡아 바둑을 승리로 이끈다.

62로 가만히 뻗은 수가 일단 끈끈한 노림을 내포한 수다(63에 바로 막는 것은 흑A가 선수여서 금방 살려주고 만다). 다음 64가 귀의 사활과 연관된 날카로운 응수타진. B로 이어주면 간단하다. 그러나 이처럼 공배를 잇는 것은 고수들에겐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손을 빼면 큰일난다. '참고도'에서 보듯 3이 선수되는 순간 귀의 흑은 사망한다. 그렇다면 공배라도 이어야 할까. 노심초사와 함께 조 9단의 흰머리가 늘어난다.

장면2=조 9단은 장고 끝에 65로 받았다. 부분적으로 좋은 수. 그러나 이번엔 66으로 다가온 수가 좋았다. 조 9단은 포석 단계부터 백△들을 노렸으나 66, 68로 인해 공격 한번 못해 보고 살려줬다. C도 있어 백은 이미 안심이다. 흑은 여기서 확실하게 비세로 돌아섰다. 190수에서 불계승. 최철한은 8강에 진출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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