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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리더 그들을 의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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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과연 그럴까. 하루도 쉬지 않는 국제분쟁과 기업 사기는 불가피한 통과의례일까. 또 그런 국가와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은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최근 이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일례로 기업현장에선 윤리경영.투명경영이 강조된다.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등 리더십 관련 신간도 오직 승리를 노리는 신격화된 지도자를 경계하라고 권한다. '군주적 리더십' 대신 '서번트(Servant.하인)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목청을 돋운다.

히틀러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진 립먼-블루먼 교수에 따르면 히틀러는 전기작가들에게 최고의 스타다. 1944년부터 2003년까지 히틀러를 다룬 책은 무려 2067권. 1년 평균 35권 이상 나왔다. 분권.네트워크의 정보화사회에도 사람들이 히틀러에 매료되는 이유는 뭘까. 블루먼 교수가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정명진 옮김, 부글북스)에서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이 책에는 '유독성 지도자''치명적 리더'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정치.경제.종교.스포츠 등 다루는 영역도 넓다. 기존의 리더십 책이 성공.효율 같은 리더십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했다면 '부도덕한…'은 이와 반대되는 길을 택했다. 리더십의 부정적 속성을 밝히고, 또 대중들이 '사악한' 지도자에게 충성하는 심리를 파헤친다.

'부도덕한…'에는 평범한 직장인부터 고위 정치인까지 참고할 대목이 많다. 남의 잘못에서 나를 바로잡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 CEO라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옛 우리 선비들이 자신을 관리하는 모토로 삼았던 '신독(愼獨)'처럼 무수한 직원을 관리해야 할 경영인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풍성하다. 리더들의 실천사항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일반 리더십 관련서와 달리 우리에게 치명적 '해'를 끼친 지도자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예컨대 책에는 엔론.앰더슨.임클론.퀘스트.타이코.와나코.월드컴 등 한때 각광을 받다가 '업계의 망나니'로 사라진 미국의 유수한 기업들의 CEO가 도마에 오른다. 자기 아들에게 종신회원 자격을 주려다 빈축을 산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유력 정치인들의 '구린 데'를 수집해 반세기 가까이 군림해온 에드거 후버 전 미국 FBI국장, 판사들에게 뇌물을 먹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등 각계 인물들이 해부된다.

이들 리더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신성화하고, 일반인에 잠재된 공포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성인(聖人)을 따르고 싶은 대중의 나약함,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는 선민의식, 사회의 중심에서 활동한다는 월등의식, 상대를 짓눌러야 우리가 살아난다는 경쟁심리를 부추기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온 인물들이다.

문제는 이런 그릇된 태도가 지구촌 전체가 촘촘하게 얽힌 네트워크 사회에서 더욱 유해하다는 점이다. 특정 기업, 특정 국가의 불안은 다른 기업, 다른 국가의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는 까닭이다.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지적한 것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빚어진 9.11테러는 지금도 지구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이런 난국을 해결할 키워드로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우분투'를 든다. 우분투는 서로의 안녕을 가리키는 말.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를 종식시켰다. 쉽게 말해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을 둘로 나누는 2분법에 마침표를 찍자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천사표 말'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현대사회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사람들을 조직.지휘하는 리더들의 선택이 분명해진다.

실패한 기업인들의 어두운 구석을 들춘 'CEO의 두 얼굴'(레도드 세일즈 외 지음, 나무처럼), 섬김의 리더십을 강조한 '영혼을 움직이는 리더'(커트 센스케 지음, 황금부엉이) 등의 문제의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 강압적 리더를 통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싫어하고, 나의 법칙은 남을 억압할 수 있는 것. 흑과 백 한쪽만 고집하는 편협한 인식이 극복대상 1호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스티븐 샘플은 "회색으로 생각하고, 두 가지로 볼 것이며, 전문가를 전적으로 믿지 마라"고 충고했다. 여기서 전문가는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리더들을 가리킨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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