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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으로 꽉 막힌 남북, 결핵사업으로 뚫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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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근 대한결핵협회 회장은 “결핵은 인류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라며 “북한의 결핵을 해결해야 행복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래 사진은 한반도 최초 의 크리스마스 씰. [중앙포토]

“핵으로 막힌 남북관계, 결핵으로 뚫을 수 있습니다.”

 정근(55) 대한결핵협회장의 주장이다. 남북관계 경색의 핵심인 북핵 문제를 보건이슈로 풀어보겠다는 의미다. 지난달 24일 결핵예방의 날을 맞아 그가 가장 강조한 건 북한의 결핵 예방이다. 결핵 치료와 예방이야말로 통일의 초석을 놓을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안과 전문의인 정 회장은 2004년 의료봉사단체인 ‘그린닥터스’를 만들었다. “아프고 돈 없는 사람 치료가 소명”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회원들과 함께 개성공단의 진료소를 오가며 북한 주민 45만 명을 무료로 진료했다. 그는 “북한의 결핵 치료는 남측의 결핵 예방과도 직결되는 생명의 문제”라며 “북한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진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도 문제지만 한국도 결핵의 청정지대가 못 되는데.

 “한국도 매년 4만명 가량이 결핵을 앓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결핵 발생률이 가장 높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보다 다섯 배 더 많은 결핵환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결핵이 다제내성결핵, 즉 결핵 치료에 가장 중요한 약제에 내성이 생긴 결핵이라는 점이다. 다제내성결핵의 경우 치료 기간은 세 배로 길어지며 성공률도 현저히 낮아진다.”

 -북한에 다제내성결핵이 퍼진 이유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지금까지 북한에 잘못된 결핵약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북한 결핵 환자들을 면밀히 진찰하지 못하고 약을 일방적으로 보내다 보니 특정 약제 성분에 내성이 생기게 됐다. 영양상태도 좋지 않으니 상황은 더 악화됐다. 북한은 결핵으로 초토화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해결책은.

 “개성공단에 결핵검진센터를 열고, 나아가 황해도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남북 합의로 운영해야 한다. 각 환자에 맞는 항결핵제를 맞히는 게 시급하다. 독일 역시 통일(1990년) 이전인 74년에 이미 전염병 관련 정보를 교환키로 보건 협정을 맺었다. 통일준비위원회나 통일부도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침 한 번으로도 전염되는 게 결핵이기 때문이다. 남북의 접근성이 모두 좋은 개성이 검진센터론 최적이다.”

 -결핵 요양원은 왜 해주인가.

 “한반도를 통틀어 첫 결핵 병원이 세워진 곳이 해주다. 캐나다의 셔우드 홀 박사가 32년 해주 요양원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했던 게 한반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다. 그 뜻을 이어 남북이 함께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세운다면 의미가 큰 과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린닥터스 시절 경험을 되살려보면 북한은 남측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남측에서 오는 지원물품은 남측이 필요없기에 북한에 버리는 거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불신을 없애기 위해선 하루빨리 일에 착수해야 한다. 북한의 결핵 치료는 1차적으로는 북한을 위한 거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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