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34〉중국 항저우 국제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4면

2007년 남편이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온 가족이 중국에 와 올해로 8년째 살고 있다. 외국 생활을 시작할 때 아이가 셋이나 되다보니 교육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베이징에 자리를 잡았던 것도 그곳에 한국인이 많아 아이들 교육 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기 쉬울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항저우, 학원 많지 않지만 '중국 속 북유럽'같이 아름다운 도시
국제학교선 매일 수업태도 전하며 학부모와 적극 소통
예체능, 외국어 강조...학업량 많은 중국 공립보다 여유

 

엄마 공미희(뒷줄)씨와 딸 박현서양, 막내 박준용군, 큰아들 박준성군(앞줄 왼쪽부터)

자의든 타의든 중국에 아이를 데려온 한국인 부모의 교육 목표는 거의 같다. 아이가 중국어와 영어에 능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미취학 연령인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초등학생 딸과 아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다. 중국어와 영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쌍어(雙語)학교를 선택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베이징에서 쌍어학교로 유명한 곳은 북경55학교와 BIBS(Beijing International Bilingual School)다.

 북경55학교는 공립학교다. 중국 아이들이 다니는 일반 학급과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국제반이 한 학교에 같이 있는 시스템이다. 공립학교인 만큼 학비가 거의 들지 않고 현지인 아이들과 어울리며 중국어를 배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BIBS는 국제학교인 만큼 학비는 비싸지만 시설도 깨끗하고 외국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특히 영어 위주로 수업하면서 중국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해 가르치는 여느 국제학교와 달리 BIBS는 중국어 수업이 전체 수업의 40%에 달한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엔 북경55학교에 다니다가 나중에 BIBS로 옮겼다. 두 학교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내 경우는 중국 공립학교보다 국제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나아보였다.

중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항저우

베이징에서 3년 지낸 뒤 2010년에 항저우로 이사했다. 사실 상하이와 항저우 두 곳 중에 어디로 이사할지 갈등이 많았다. 상하이는 베이징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이 지역의 국제학교는 한 반에 50% 정도가 한국 학생일 정도로 한국인 비율이 높다.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영어·수학 학원도 많다. 자녀를 한국 대학으로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라면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지내며 국제학교를 보내고,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한국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 보내며 사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항저우는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도시가 아니다. 처음 이사왔을 때만 해도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온 백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동네였다. 요즘은 IT와 게임 산업을 집중 육성하다보니 인도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HIS에도 한 학년에 한국 학생이 고작 1~2명 있는 정도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이 한국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니, 객관적으로는 상하이가 더 적합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항저우를 택한 건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쑤저우(蘇州)에서 태어나 항저우(杭州)에서 살면서 광저우(廣州) 음식을 먹고 리우저우(柳州)에서 눈을 감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 표현할 정도로 항저우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항저우에는 공립학교가 59개 있고, 국제학교는 HIS 하나뿐이다. 중국의 공립학교는 학비가 무료고, 급식비만 따로 내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정통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익힐 수 있다. 최근 중국에 교육열이 뜨거워지는 추세를 반영하는 듯 공립학교 교사의 수준도 높아지고 학업량도 많아지고 있다. 주변에서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 못지않게 엄청난 양의 과제를 내주고 진도도 빨리 나간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는 베이징에서 쌍어학교를 다니며 중국어를 익혀둔 상태라, 좀 더 편안한 분위기의 국제학교에 다니게 하고, 중국어는 과외로 가르치고 있다.

미국식 국제학교지만 차분한 수업 분위기

HIS는 미국식 국제학교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해준다는 점이다. 학생간 교류나 학부모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있게 학교가 중간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항저우로 이사오기 전에 아이들 전학 문제로 학교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전학 절차의 행정적인 부분을 꼼꼼하게 설명해준 뒤엔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한국인 학부모 대표와 연결해줬다. 또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자마자 아이의 담임 교사가 내게 전교의 한국 학부모 전체의 전화번호는 물론, 한국 학부모 행사가 언제 있는지, 행사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줬다.

 

초등학생 교실. 교사와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며 수업을 하는 모습. 전시된 미술 작품은 학급 아이들이 협동해 꾸민 것이다.

담임 교사가 학생의 알림장을 직접 작성해서 학부모와 소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막내는 항저우에 이사 와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터라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숙제나 준비물에 대한 전달 사항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올 때도 많았다. 그래도 별 문제없이 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건 교사가 알림장에 꼼꼼하게 전달 사항을 적어줬기 때문이다. 알림장에는 이런 전달 사항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아이가 하루 동안 수업 태도가 어땠는지, 친구와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그림이나 색깔로 표현해 학부모에게 알려준다.

 막내 아들의 담임 교사는 스티커를 자주 사용했다. 수업 태도도 좋고 친구들과도 쾌활하게 보낸 날은 초록색 웃는 표정의 스티커를 붙여준다. 숙제를 하지 않거나 문제 행동을 한 학생에게는 우울한 표정의 파란색 스티커를, 친구와 심하게 싸우는 등 교장실에 불려갈 정도의 사건을 일으킨 아이는 붉은색 놀란 표정의 스티커를 받게 된다.

 초등학교는 1~5학년까지고,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으며 학급당 인원은 20명이 채 안된다. 수학·사회·영어는 담임 교사에게 배우고, 중국어·과학·미술·음악·체육·컴퓨터는 과목 전담 교사가 따로 있다. 매 수업 시간마다 교사가 정한 기준에 따라 4~5개 모둠으로 나눠 수준별 수업이 진행된다. 수준별로 수업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나 학부모나 이를 ‘우수’와 ‘열등’ 그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목마다 그룹을 나누는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그룹에서 배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되는 체육 수업. 축구, 야구, 럭비, 하키 등 단체운동이 인기가 높다.

국제학교라고 하면 수업 분위기가 자유분방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HIS는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거나 잡담을 나누는 게 금지돼 있다. 수업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건 얼마든지 허용하지만 떠들거나 수업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면 다른 학생의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제지를 한다. 또 수업 시간만큼이나 쉬는 시간이나 운동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전·점심·오후 시간에 각 30분씩 운동장에 나가 뛰어노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에는 학부모에게 ‘몸이 아파서 외부 활동을 하기 힘들다’는 확인서를 받아온 학생만 제외하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가 놀아야 한다.

HIS는 방과후 수업이 매우 다양하고 활성화돼 있다. 체육활동이 대다수다. 축구·농구·야구·태권도·수영처럼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부터 하키·럭비·체조·마라톤·탁구·소프트볼·스케이트보드·원반던지기 등 생소한 종목도 많다. 1년 동안 체육 방과후 수업은 최대 6개까지 참여할 수 있고, 방과후 수업을 받은 팀끼리 중국 남부의 상하이와 난징 등에 있는 학교 팀과 겨루는 대회도 출전할 수 있다. 체육활동 외에도 요리·레고·오케스트라 등 취미활동과 관련된 과목도 다수 개설돼 있다. 최근엔 모의유엔, 수학올림피아드 반처럼 진로와 심화학습을 겸하는 방과후 수업도 인기다. HIS의 교사가 운영하는 방과후 수업은 무료고,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한 경우만 별도 수업료를 낸다.

 
아름다운 환경에서 여유 있게 크는 아이들

아이 셋을 HIS에 보내면서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5KRun이라 불리는 단거리 마라톤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체력에 따라 5㎞ 이내에서 자신이 뛸 수 있는 목표 거리를 정해 교사에게 미리 제출한다. 목표 거리를 돌파하면 모두가 박수쳐주며 축하해주는 체육대회로 1년에 한 번씩 열린다. 항저우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면서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파도치는 강으로 유명한 쳰탄강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라톤 코스이기도 하다. 대회 진행은 교사와 학부모, 자원봉사를 희망한 학생들이 맡는다.

항저우 국제학교 학생들이 ‘인터내셔널 데이’를 맞아 자신의 나라를 표현하는 판넬을 제작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학생이 모인 국제학교라는 점을 활용한 ‘패스포트 클럽’이라는 행사도 있다. 초등학생들이 세계의 여러 국가에 대해 공부하고 발표해보는 것이다. 초1 때는 매주 5개 국가의 나라 이름·국기·위치·언어·특이사항 등에 대해 조사하고 익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알아야 할 국가 수가 점점 많아진다. 시험을 보는 방법은 세계 지도의 윤곽선만 그려진 백지에 자신이 설명할 국가의 위치를 표시하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교사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설명이 틀리거나 부족하면 불합격(failure)이라 재시험을 봐야 한다. 통과(pass)한 학생은 패스포트에 그 나라의 비자를 의미하는 스티커나 도장을 받는다.

 중국에서 8년간 살면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욕심도 점차 버리고 있다.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잘하면서 한국의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입시 경쟁력까지 길러주려는 건 학부모의 과욕이란 생각도 든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다. 이런 여유를 갖게 된 데는 항저우의 환경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교육열은 높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며, 예체능과 외국어 실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아름다운 환경에서 아이를 좀 더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 학부모라면 항저우의 생활에 만족하겠지만, 입시 결과가 중요하다면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엄마 공미희 (42·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빈장구·항저우사범대 한국어과 교수)
정리=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관련 기사]
[항저우에서 살아보니]수준 높은 교육과 질서 의식…중국선 ‘문명도시’라 불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