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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칼럼] 일상화한 나이 차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1호 30면

‘만 29세 이상 출입금지(걸리면 죽음!!)’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우연히 본 문구다. 요즘 잘 나간다는 서울 홍대앞 한 라운지 바의 안내판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이 속엔 나이 제한 외에도 여러 조건이 적혀 있었다. 가령 남녀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기 순서에 상관없이 특정 성별을 우선 입장시킨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고지 뒤엔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정중한 당부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유독 ‘29세 이상 출입금지’ 뒤에만 ‘걸리면 죽음!!’이란 강한 어조의 경고가 달려 있었다. 20대를 이미 훌쩍 넘은 자의 자격지심일까. ‘여기는 젊은 사람들 노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그저 재미있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설령 입장이 가능하다 해도 20대들 노는 곳에 가서 굳이 불편한 시선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나이 차별을 당해야 하나 싶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손님을 가려받는 차별구역이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 있었다. ‘미취학 아동 사절’이라는 영업 방침을 매장 곳곳에 붙여놓고 어린이 동반 고객을 받지 않는 식당도 늘고 있다.

수퍼마켓에서 애완견 동반을 금지하거나, 아이들이 다루기 버거운 장비가 많은 헬스클럽에서 어린이 보호를 위해 출입을 막는 건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그저 장사하는 사람 보기에 물을 흐린다거나 다루기 귀찮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는 건 단순한 마케팅 전략 차원을 넘어 명백한 차별 아닐까. 오죽하면 에이지즘(ageism, 노인 차별)에 이어 레이시즘(인종차별)에 빗댄 키즈시즘(Kids-cism, 아이에 대한 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물론 20여년 전 대학 다닐 때도 물 좋은 나이트클럽에서 나이 많은 넥타이부대 아저씨들의 출입을 교묘히 막는 걸 본 적이 있다. 또 10여년 전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도 호텔 등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차마 눈치가 보여 아이와 함께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엔 그 어디에서도 매장 입구 표지판에 당당하게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에 대한 ‘입장불가’를 써놓은 곳은 없었다. 서로 알아서 피하고 조심할 뿐이었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에 숨어서 남녀차별이나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오프라인 상에서 차별적인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은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차별만큼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연령대별로 갈 수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는데, 달라진 게 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상 못 가는 것과 명시적으로 출입을 금지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최근 미국 아칸소와 인디애나 주에서 종교자유보호법이 논란이 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법은 기업이나 개인이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특정인에 대한 서비스나 요구를 거부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월마트 직원이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게이 커플의 결혼 케익 주문을 거부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이란 비판을 받은 이유다.

미국은 성 소수자가 성인 인구의 6~7%에 이른다. 구매력이 상당한 데다, 얼마 전 커밍아웃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처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인물도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 은밀히, 그리고 사실상 차별하는 것과 법으로 그걸 타당하다고 인정해주는 건 분명 큰 차이가 있다.

미국에선 애플과 월마트 등 기업의 압박으로 결국 종교자유보호법을 막았다. 한국에선 이제 곧 고용상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막을 방법도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안혜리 기획 에디터 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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