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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커트 코베인이 전부였던 청춘을 기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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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1967~94)이 세상을 떠났다.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후 20주년이던 지난해, 홍대 정도만 반짝 행사를 치뤘다. 하지만 1990년대, 4월만 되면 전국에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있으면 등 뒤에서 "또 너바나야?"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1998년 3월 초 어느날, 홍대 술집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너바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소주병을 든 대학 동아리 선배가 음악에 맞춰 머리를 까딱거렸다. 커트 코베인 선글라스를 쓴 그는 곧 군대에 간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동아리 이름으로 인디 밴드를 섭외해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을 연다고 들었다. 그는 1년 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공연에 쏟아부을 예정이란다. 공연 음향 설비를 빌리는 데 드는 목돈을 그가 댄 것 같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그 선배'의 계획대로 그해 4월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을 열었다. 관람료는 공짜. 포스터는 동아리 회원이 손으로 그렸다. 섭외한 밴드는 '허클베리핀' '코코어' '모레인' 그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연 당일 학교 소극장은 무척 더웠다. '제제(ZeZe)'에서 산 나의 반팔 너바나 티셔츠는 금방 땀에 절었다. 땀 냄새, 향수 냄새, 귀를 찢는 피드백 소리… 청재킷에 목폴라까지 입은 한 여자 관객은 더위에 푹 익어 있었다. 스피커 안전(?)을 책임진 나는 그녀의 땀에 절은 재킷을 스피커 위에 보관해 주겠다고 손짓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척했다.

공연 마지막 팀 '코코어' 보컬 이우성은 앵콜곡을 마치면서 기타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지만 기타는 쪼개지지 않고 흠집만 났다. 뒤풀이에서 이우성은 기타가 '짝퉁'이라서 안 쪼개진 것 같다고 말했다. 커트 코베인의 '원목' 기타는 결대로 부서지지만 우리의 '합판' 기타는 기대를 배반했다. 뒤풀이 술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왔다. 동아리에서 주최한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은 다음 해까지 3회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커트 코베인은 90년대 대중음악의 아이콘이다. '메탈의 신' 메탈리카마저 얼터너티브 사운드를 들고 나왔다. 패션에선 그런지룩을 유행시켰고 한국 인디신 초창기 밴드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얼터너티브(alternative) 록은 70년대 펑크와도 맞닿아 있다. 단순한 음악 구성은 물론이고 '동네' 클럽신의 암울한 청춘들이 주인공이었다. 언론은 둘 다 기존 록에 대한 대안으로 해석했다.

4월 5일은 커트 코베인 기일이다. 90년대 커트 코베인이 전부였던 청춘들은 아직 그날을 기억할까.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는 팬의 입장에서 쓴 대중음악 이야기입니다.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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