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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 … 아베, 미 결의안 무력화 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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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다음달 미국 방문을 계기로 지난 2007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위안부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7일자(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거론하며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표현하고 ‘가슴이 아프다’로 입장을 밝히면서다. 일견 위안부에 대한 공감을 표한 듯 하지만 속내엔 일본군의 조직적 개입과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던 위안부 결의안을 무너뜨리는 치밀한 전략이 담겼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시민운동조직인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이사는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모범 답안은 2007년 미 하원의 결의안”이라며 “인신매매라는 표현은 일본군의 강요를 적시한 결의안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결의안은 ‘젊은 여성을 성 노예로 만든 일본군의 강압’이 명기돼 있다. 김 이사는 “이런데도 단순히 인신매매라고만 하면 인신매매의 주체를 알 수없다”고 비판했다. 일본 우익들은 그간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며 조선인 모집 회사들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해왔다. 조선인이 여성들을 속여 모집했다는 주장도 인신매매에 해당된다.

 “가슴 아프다”는 표현도 ‘확실하면서도 분명하게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사과·수용해야 한다’는 결의안과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이정실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회장은 “가슴 아프다는 말은 위안부의 내막을 모르는 워싱턴포스트 독자들에겐 겸허하게 순응하는 것으로 읽히지만 이는 가해자가 아닌 제3자도 정서적 공감대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2012년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사과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아베 총리가 집권한 후 사과와 반성이 삭제되고 ‘깊이 고통을 느낀다’는 제3자의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인터뷰에서 “역사가 토론의 대상이 될 땐 역사가와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른다. 아베 총리 스스로 자신이 역사 수정주의자임을 자인한 꼴이 됐다.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객원 연구원은 “2차대전 역사 문제는 토론 대상도 아니고 역사가에게 넘길 사안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핼핀 연구원은 “뉘른베르크·도쿄 전범재판 등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제국주의 일본이 인간에 대한 범죄 행위를 통해 평화의 문명을 위협하는 전쟁을 일으켰다는데서 모두 동의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도 “아베 총리는 역사가도 전문가도 아닌데 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과거 전범들을 나라의 영웅으로 만들며 역사 다시 쓰기를 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산케이 “인신매매 표현은 한국 배려”=일본 산케이 신문은 29일 “한반도에서 옛 일본군이나 관헌이 여성을 강제연행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의 ‘인신매매 희생’ 표현은 한국 측에 일정한 배려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도쿄=채병건·이정헌 특파원 mfemc@joongang.co.kr

◆위안부 결의안=2007년 7월 미국 하원이 통과시킨 결의안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것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끔찍한 역사를 현세대와 미래 세대에 교육시키라는 요구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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