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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와 '노블리스 오블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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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초년 시절 이름은 ‘홍판표’다. 청주지검 초임 검사 시절 이름을 바꿨다. 그의 개명은 청주지방법원에 있었던 당시 이주영(현 새누리당 의원) 판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성명학을 공부했던 이주영 의원은 “이름 가운데 ‘판(判)’ 자에 ‘칼 도(刀) 변’이 끼어 있어 큰 인물 되기 어렵다”며 ‘준(準)’ 자를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이름에 들어 있던 ‘칼 같은’ 기질은 버리기 어려웠던 걸까. 그는 타고난 ‘이슈 파이터’다. 언행에 거침이 없다. 그래서 시원시원하다는 평가도 적잖이 들었다.

 2005년 한나라당 의원일 때 낸 국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해외 외교관, 연구원 등의 아들이 이중국적 상태에서 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버릴 수 없도록 한 법안이었다. 사회 지도층의 병역 기피를 막자는 취지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말로만 애국·애족 부르짖는 상류층에 날리는 펀치”라며 후련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2009년 낸 병역법 개정안(고령 병역 면제 기준을 31세에서 36세로 높이는 내용)도 연장선상에 있다. 그가 이때 자주 썼던 말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신분에 따르는 윤리적 의무)’다.

 이후 일련의 추진 과제들(소득수준별 대학 등록금 차등화, 아파트 반값 정책 등)도 마찬가지다. “찢어지게 가난해 점심시간이면 우물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다”(자서전 『변방』)는 그에게 친서민 행보의 원천은 꽤나 깊은 듯 보였다.

 민감한 문제도 빙빙 돌리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스타일은 그에게 ‘대중성’이란 무기를 안겼지만 거꾸로 ‘포퓰리스트’란 딱지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벌이는 싸움은 대개 외로웠다. 국적법과 병역법 개정안으로 대중이 환호했을 때 정작 그가 몸담은 보수 진영은 무덤덤했다. 경남 도백으로 내려가 진주의료원을 폐쇄시키고, 무상급식 중단 조치라는 초대형 뇌관을 건드렸지만 중앙 당에서 우군을 자처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홍 지사가 미국 출장 기간 중 평일에 친 골프 때문에 구설이 오래 가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정면돌파다. 28일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야당이 주장하는 책임론에 대해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우선 골프를 친 시점. 금요일이지만 엄연히 평일 오후다. “현지에선 ‘사실상’ 주말이 시작됐을 때”라면서 ‘사실상’이란 단서를 단 것은 에두르지 않는 홍 지사 화법과 다르다. 야당의 화살이 쏟아지는 이유를 무상급식 중단 결정에서 찾는 듯한 것도 그렇다. 새누리당은 이번 싸움에서도 홍 지사와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홍 지사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내세웠을 때 환영했던 사람들은 이번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까. “지도층이 권리와 특권만 주장하면서 자리에 걸맞은 엄격한 도덕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과거 발언과 해외 출장 골프는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다.

김형구 JTBC 정치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