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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대북전단, 보내려면 조용하게 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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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탈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북전단(삐라)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등 5개 민간단체들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풍자 영화인 ‘인터뷰’의 DVD와 USB가 포함된 대북전단 살포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초 천안함 폭침 5주기인 26일에 맞춰 살포할 예정이었으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측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부로 전단 살포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지난해 10월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남북한이 상대방을 향해 전단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다. 남북 당국은 전단을 자신의 체제우위를 선전하는 무기로 적극 활용해 총성 없는 삐라전쟁을 이어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삐라를 매개로 한 심리전의 전개, 얼굴 없는 은밀한 수행, 정책적 지원, 정치적 목적 추구 등은 쌍방 간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래 컴퓨터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북한의 삐라 수요가 낮아졌다. 그들 스스로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공간’이라 칭하는 인터넷을 통해 우리의 안방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대남 심리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이 삐라 살포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대부터 탈북자 민간단체들이 대북전단 보내기 운동을 펼치면서 전단 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간 차원의 전단 보내기는 본질상 기본권의 영역에 속한다. 이는 북한도 가입한 ‘자유권규약’ 제19조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특히 북한 주민과의 소통권 실현, 북한 주민의 알 권리 혹은 정보 접근권을 충족시키는 행위다. 북한이 원천적으로 남북한 주민 간의 소통과 연락을 차단하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진실을 알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또 자유의 공기를 전단에 담아 보내는 것은 북한의 개방 촉진과 정보 격차 해소 차원에서도 유의미하다. 이런 입장에서 의정부지방법원도 지난 1월 6일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날리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적법한 의사표시의 한 방법이므로 국가도 이를 원칙적으로 제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월 23일 “민간의 대북전단 활동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므로 북한의 공갈·협박 또는 남북 당국 간 비방·중상 합의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가칭 ‘대북전단 살포 규제법’을 만들어 대북전단 보내기를 일반적으로 금지하려 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 전단 발송 시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사전 검열’에 해당될 소지가 크다. 교류 협력의 촉진이란 입법취지에 맞지 않고, 법체계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주민 접촉이나 물자 반출의 경우 상대방을 특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전단은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적법한 표현이라도 타인의 권리나 명예를 부당하게 침해·훼손할 수 없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그간 북한은 전단을 실은 풍선이 북측으로 들어올 경우 도발 지점뿐만 아니라 전면적인 격파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실제로 대량 살포가 있자 고사총을 쏘아 그 총탄이 경기도 연천 인근 지역에 떨어진 바 있다. 최근 북한은 이보다 더 강력한 수준의 무력 대응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할 경우 그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의 안전 위협 외에도 전단 살포가 계속될 경우 장병의 외박 제한, 지역경제 위축 등 여러 가지 불편이 적지 않다. 보·혁 대결과 국론분열이 심화되고, 남북관계 경색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목적이 정당하고 명분이 있다 해도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없으면 전단 살포 운동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각에서 민간단체는 좀 더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행사’를 강행하기보다는 조용하게 비공개로 전단을 보내는 게 바람직하다. 매번 행사 때마다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은 역량의 낭비, 불필요한 갈등의 증폭만 초래할 뿐이다.

 대북전단의 근본 취지는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굳이 북한 최고지도자를 악의적으로 비방할 필요는 없다. 이는 ‘표현의 과잉’으로 순수성을 의심받을 공산이 크다.

 전단 보내기가 용기 있고 정당한 표현으로 더 많은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느냐 여부는 주도세력이 보다 더 책임 있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고집불통의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전단의 필요성과 순기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조화와 균형의 자세가 절실하고, 정부 당국과도 건설적인 대화와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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