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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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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성환
바른기회연구소 소장

요즘 한국은 분노 잉여 사회에 가깝다. 특정한 이슈가 부각되면, 많은 이가 그 이슈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보다는 불만을 토로하기에 바쁘다. 아니 불만을 넘어서 분노를 표출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특히 강자가 약자에게 부적절한 방식으로 권위를 세우는 ‘갑의 횡포’를 만나게 되면 이러한 갈등과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다. 혹자들은 이를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감정의 과잉 표출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정당화시키면서 말이다.

 모바일 환경의 대중화라는 기술적 진화로 인해 누구나 글을 쓰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글을 쓰고, 특정인을 비난할 수도 있게 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덩달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수많은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NS), 웹사이트 게시판, 기사의 댓글 등에서 여론이 형성되고 과잉된 감정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사이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여기저기 퍼져 나가는 정보의 대부분은 남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과연 이러한 분노 표출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 위해 그 의미를 잘 헤아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라는 것은 분개하며 몹시 성을 낸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공격성이 담겨 있다. 또한 공격의 대상도 필요하다. 그 효과는 분명하다.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받는 대상은 어떠한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모멸감까지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에서 상황의 본질은 의미를 잃는다. 왜 분노의 대상이 되었는지, 애당초 무엇 때문에 본인들이 날 선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권력에 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의 과잉은 표출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노는 더 큰 분노로 귀결되고, 이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최근 분노의 대상이 됐던 조현아 전 부사장, 백화점 주차장 모녀 등의 사례를 지켜보자. 잘못은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들 모두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 사건의 경우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하지만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됐고, 네티즌들의 비난이 더해지며 여과 없이 확산됐고, 예능프로에서까지 패러디되는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벌어졌다. 기본적인 인권도 보호받지 못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삶을 살며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개인적인 모욕과 질타를 고스란히 받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여론몰이식의 분노 표출이 무엇을 바꿨는가? 또한 이것이 성숙한 사회로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을까? 단기적으로 계도의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또 다른 피해자만 양산해낸 꼴이 됐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회의 시스템이다. 분노를 표출하기만 하고 수렴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분노를 다스리고 억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이 냉정함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성을 잃은 여론을 제자리로 돌리는 자정의 역할을 자정하는 역할이 바로 언론의 할 일이다. 보다 차갑게 사태를 주시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해내는 동인(動因)을 이끌어내야 한다.

 작금의 시대가 가지는 갈등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시발점보다는 왜곡된 확산을 막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 갈등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세세하게 분석할 수도 없고, 이를 방지해낼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산의 통로인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여론은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여론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완충하고 방향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여론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서는 분노 조절을 해야 한다. 상황을 냉정하고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분노를 표출하게 됐다. 특히 모바일·SNS를 통해 상황도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부지불식간에 인민재판식 분노 표출에 동참하게 된다. 이런 폐해를 막으려면 사회적 갈등을 공론화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감정을 부추기기보다 사람과 시스템이 어우러져 따스함을 보여주는 쪽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과열된 분노 과잉의 사회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건전한 갈등은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동인이 된다. 하지만 갈등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면 이는 사회의 독(毒)이 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관용으로 분노를 보듬는 관대함은 오히려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조성환 바른기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