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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유학생·주재원 투표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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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에게 부재자 투표라도 할 수 있게 준비 중이다. 다음 대선 때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노무현 대통령, 10일 베를린 독일동포 간담회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해외동포들이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3월 21일 방미 중 한인동포 환영회에서)

정치권이 해외 거주자에 대한 투표권 부여 방안을 앞을 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차기 대선에서부터 적용하겠다는 생각이다. 법 개정을 통해 해외 거주자의 투표 참여가 이뤄질 경우 이들의 표는 대선가도에 핵심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 박근혜 대표의 생각대로 재외국민(한국 국적을 가진 해외동포)까지 투표권을 갖게 되면 대상은 270만 명이나 된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 차이는 57만여 표였다.

◆ 누구까지 투표 가능할까=노 대통령의 발언대로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의 투표 참여는 다음 대선부터 가능할 전망이다. 중앙선관위는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에서 국외 부재자 투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외교관.유학생.상사 주재원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것이다.

나아가 선관위는 전자투표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해외 거주자에 대해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선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다. 이 안이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통과하면 약 91만 명이 새로 투표권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느냐로 논란의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재외국민에 대한 참정권은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출범과 함께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

박 대표가 밝혔듯이 한나라당은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홍준표.임태희.박계동 의원 등 34명은 지난해 11월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사실상 당론에 가깝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 6일 재미동포 김재수씨 등 5명의 대리인 자격으로 재외국민 참정권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미 97년 대선을 앞두고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기각했었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에 따르면 "97년 당시 헌재가 기각했을 때 투표용지의 분실 등 선거의 공정성 확보가 어렵고 기술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제시했으나 요즘엔 한국 해외 공관에서 투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로 해외 선거가 국내 부재자 투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며 당시의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OECD 국가 대부분이 재외 국민 참정권을 허용하고 있다"며 미국.영국 등의 사례도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베를린 동포 간담회에서 "외국에서 영주권.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참정권을 준다고 했을 때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 정치권 입장과 계산=각 당의 입장은 여야가 미묘하게 갈린다. 대선에서 연거푸 패한 한나라당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재미동포 등에 상대적으로 지지표가 많을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인상이다. 특히 40대 이상 동포들의 표에 기대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의원은 13일 "한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도 우리 국민인데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효석 의원도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해 찬성"이라고 했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대체로 '절차상 문제'보다 '참정권 부여'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신중하다.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의 경우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데 적극 동조하고 있으나 재외국민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검토할 문제"라고 하면서도 한나라당이 적극 나서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도 읽힌다. 이강래 당 정개특위 위원장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동포의 경우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있는 만큼 다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선관위는 해외 거주자에 대한 투표를 실시할 경우 실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 만큼 우선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뒤 그 다음 대선쯤 재외국민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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