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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시장 마비…근본처방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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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백약이 무효."

3월 중순 SK글로벌과 카드채 사태로 비롯된 채권시장의 동맥경화가 석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카드채 대책을 내놨으나 채권시장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차제에 채권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채권시장은 한 겨울=콜금리 인하 이후 3년 만기 국공채 금리는 4.1%대까지 떨어졌지만 카드채는 7% 안팎에서 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일부 카드채의 금리는 평소의 두배 수준인 10%까지 올랐다.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콜금리 인하로 채권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했지만 안전한 국공채에만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회사채 시장은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채권정보업체인 본드웹에 따르면 지난 2월 7천7백87억원에 달했던 BBB 등급의 회사채 발행은 지난달 1천4백28억원으로 5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이처럼 회사채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공모가 아닌 사모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상장.등록사의 사모사채 발행액은 4천8백여억원으로 지난 2월에 비해 28%, 지난해 4월에 비해서는 46% 늘었다. 특히 코스닥 기업의 1~4월 중 사모사채 발행액은 2천8백여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천여억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근본 대책 마련이 해법=채권시장 침체의 근본 원인으로는 채권을 살 만한 안정된 기관투자가가 줄었다는 점이 꼽힌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이 통폐합되고 종금사들도 거의 사라져 채권 수요층이 얇아졌다는 것이다. 은행은 대형화됐지만 규제에 묶여 채권 매입을 늘릴 형편이 못된다. 과거 채권의 주요 수요처였던 투신사들도 제 몫을 못하고 있다. 한 투신운용사 관계자는 "금융업종 간 영역이 확대되면서 투신 고유의 영업기반이 사라져 예전만큼 채권 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정크본드)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펀드평가 우재룡 사장은 "고위험을 감수하며 고수익을 추구하거나 헐값에 채권을 팔려는 이들은 늘 있게 마련인데 정부가 정크본드 시장의 형성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서근우 연구위원은 "국내 채권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채권시장의 국제화를 가속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한국에서 채권을 발행하도록 유도한다면 채권을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이를 운용하는 금융기관들의 선진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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