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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일상에 작은 느낌표 찍듯 즐거움을 디자인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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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08면

흰 종이와 검은 종이 위에서 다 보이는 자

무미건조한 일상에 작은 느낌표를 찍듯 즐거움을 주는 순간을 만들자-. 이같은 컨셉트로 시작한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는 2002년 사토 오오키(佐藤 オオキ)가 동업자 이토 아키히로(伊藤明裕)와 함께 만들었다. 1977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토 오오키는 와세다대 건축과 졸업 후 밀라노 가구박람회에 갔다가 감명을 받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6명의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고 다양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아(넨도는 찰흙이라는 뜻의 일본어 粘土) 스튜디오를 차렸다. 3년 후엔 밀라노에 두 번째 사무실을 냈다.

세계를 움직이는 일본 디자인 그룹 넨도

넨도는 한 개의 만점 짜리 아이디어보다 여러 개의 70점 짜리 아이디어를 빠르게 내어 고객과 함께 100점 짜리 제품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숨기는(혹은 숨는) 디자인, 완성되지 않은 디자인을 표방한다. 이런 특별한 디자인 철학으로 지난 1월 유럽 최대 실내장식 박람회인 파리 메종 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넨도의 대표작들은 뉴욕현대미술관,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넨도는 12권의 디자인 관련 책을 출간했는데 한국에서는 지난해 『넨도 디자인 이야기』(미디어샘)가 처음 나왔다. 2014년 9월엔 일본 소고 백화점 요코하마점에 ‘백야드 바이 N(BACKYARD by | n)’이라는 이름으로 매장도 열었다.

중앙SUNDAY S매거진은 창간 8주년을 맞아 넨도의 오오키를 밀라노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겸손하고 차분해보이는 30대 후반의 일본 청년에게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스타 디자이너로서의 느낌은 좀체로 찾을 수 없었다.

하시쿠라 마츠간(hashikura matsukan)이 제작한 넨도의 수키마 젓가락 세트. 일본의 전통 옻칠 기술로 만들었다.
1 원퍼센트 프로덕츠가 제작한 넨도의 트윈 티컵 2 블록 꽃병 3 스탁 사케 세트 4 티슈 디스펜서 카잔 5 전율하는 그릇들 6 프리드만 벤다가 제작한 스카터 장식장 7 COS의 셔츠를 이용한 넨도의 Dipped Shirts 전시

2015 파리 메종 오브제 선정 올해의 디자이너
넨도의 디자인은 가구나 오브제, 전시회, 인테리어까지 한계가 없다. 보통 디자이너들은 기능과 형태를 중요시 하지만 넨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제품이 전하는 이야기다. 속삭이는 듯한 이들의 디자인은 간결하지만 다정하다.

벽돌같이 생긴 네 가지 사이즈의 세라믹 병들을 빌딩 블록처럼 원하는대로 쌓아올릴 수 있는 꽃병이라든지 컵과 접시를 포개놓은 형태를 모방해 디자인된 커피필터로 구성된 트윈컵 세트, 팽이처럼 굴릴 수 있도록 아랫면을 볼록하게 만든 찻잔 뚜껑, 포개지게 만든 젓가락 라센과 카미아이, 물감튜브처럼 만든 초콜릿, 큐빅 고무줄, 클립으로 사용할 수 있는 USB, 2차원적으로 만든 블랙 와이어 꽃병 등은 넨도가 우리의 일상에 재미와 기쁨을 주기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주는 몇가지 예일 뿐이다.

가구 역시 단순해보여도 새로운 관점과 기술적 해법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K%의 블랙라인 멜트 의자나 5mm 아크릴판을 조립해 만든 프리드맨 벤다의 스카터 장식장 등이 대표적이다. 넨도는 삼성 에버랜드 패션부문이 인수한 이탈리아의 럭셔리 브랜드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와 함께 2014년 밀라노 가구박람회 기간에 혁신적인 두 개의 컬렉션 ‘Pocket’과 ‘8 Bags’를 선보이기도 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고정관념을 파괴하기도 한다. 도쿄 아카사카에 위치한 병원 엠디 넷 클리닉(MD Net Clinic)은 얼핏보면 고풍스러운 일반 병원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곳의 문은 장식일 뿐 상담실에 들어가려면 벽을 열거나 책장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2013년 독일브랜드 악소(AXOR)를 위해 디자인한 ‘워터드림(WaterDream)은 “새로운 형태의 수도꼭지나 샤워기를 제작하는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의 관계를 혁신시키고 싶다”는 필립 그로헤의 의도를 읽었다. 삶을 상징하는 ‘물’과 ‘빛’을 샤워램프라는 제품으로 구현한 것이다.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주최한 개인전과 단체전은 넨도의 컨셉트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2012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열린 카마, 섹스 앤 디자인 전시에서는 외부의 터치에 의해 인간이 느끼는 에로틱한 전율을 표현하기 위해 얇은 실리콘 그릇들이 (선풍기)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게 했다. 스튜디오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런던 사치 갤러리 등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2012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 기간에 맞춰 팔라초 비스콘티에서 개최한 ‘트라이얼과 에러’(Trial & Error·전시작이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에 지은 이름) 전시는 넨도의 실험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전시로 꼽힌다. 유리·플라스틱·탄소섬유·철사 등 여러 다른 재료를 사용해 제작한 실험작품들과 1% 프로젝트(각각의 제품은 100개 작품의 1%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 100점이 함께 전시됐다.

밀라노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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