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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타일러 라쉬의 비정상의 눈

가족과 친척은 함께 있어도 그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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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타일러 라쉬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지만 가족·친척은 머나먼 미국에 있다. 얼굴 한 번 보려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휴가를 내서 16시간 동안 날아가야 한다. 미국 상위 1%에 속한 부자가 아닌 이상 보고 싶어도 가족을 자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족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술 발달 덕분에 자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리적인 거리는 물론 마음의 거리도 여전히 멀다. 그래서 미국에 가게 되거나 가족들이 한국에 오게 되면 느낌이 그렇게 새로울 수 없다. 보자마자 10년도 더 된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함께했던 추억을 되살리게 된다. 가족이란 눈앞에 있어도 보고 싶고, 그리운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두 살 어린 남자 사촌이 있다. 다른 주에서 자랐지만 여름방학마다 외할머니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같이 목욕하고 나란히 잤다. 할머니 댁 뒷마당에서 나란히 토끼를 쫓아다녔고, 나무에 함께 올라가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기숙고교에 다니고 먼 곳의 대학에 진학하면서 볼 기회가 확 줄었다. 대학 졸업 뒤 서로 다른 도시에서 취직해 일에 파묻혀 살게 되면서 같은 나무에 올라가기는커녕 큰 명절조차 함께 쇨 수가 없게 됐다.

 그런 사촌동생이 지금 나를 보러 한국에 와 있다. 둘 다 일과 대학원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휴가를 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휴가를 내도 해야 할 일이 줄줄이 생기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그렇게 힘든 상황인데도 지구 반대쪽까지 나를 만나러 오다니…. 고맙다. 고마운 일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페루 출신인 동생은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한데, 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도착해 나를 만난 순간부터 한국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퍼붓고 있다. 도착한 지 이틀 뒤부터 한국말 인사와 여러 가지 표현을 익히고 있다. 한글도 배우는 중이다. 인사말을 할 때는 나보다 한국어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듣는다. 주변 사람들이 사촌동생에게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다.

 이렇게까지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촌형과의 관계를 깊게 유지하려는 우리 동생이 너무나 고맙다. 미국에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과 함께 ‘가족이 친구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격언도 있다. 하지만 나를 만나러 태평양을 건너온 사촌을 보며 가족·친척 관계는 서로 노력하기에 달렸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타일러 라쉬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