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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브라질, 정부 부패에 '대통령 물러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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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마 나가라, 브라질 여당 나가라(Fora Dilma, Fora PT)”.

15일(현지시간) 브라질 전역에서 울려퍼진 구호다. 이날 정치권의 비리 척결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수도 브라질리아와 전국 26개 주(州)에서 열렸다. 총 170만∼180만 명이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시위는 브라질 최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 비리 스캔들이 도화선이 됐다. 대형 건설사들이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이 오갔고, 이 가운데 일부가 돈 세탁을 거쳐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경제를 책임지는 ‘사실상’ 국영 정유회사다. 지분의 60% 이상을 정부와 브라질개발은행, 브라질 국부펀드 등이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석유 생산량은 브라질 전체의 90%를 웃돌고, 직ㆍ간접 고용인력은 40만 명에 달한다. 2013년 기준으로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에서 페트로브라스 매출(약 156조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이른다. 호세프 현 대통령은 2003~2010년 이 회사 이사회의 의장을 지냈다.

그런데 이 회사 전 고위 간부가 최근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최대 2억 달러 이상이 브라질 여당(노동자당)의 정치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폭로했다. 또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당과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고 돈을 세탁했다는 비리 의혹 역시 제기됐다. 페트로브라스 비리로 연방 검찰의 조사 대상에 오른 정치인은 여ㆍ야를 통틀어 50여 명에 달한다.

결국 부정부패 의혹으로 국제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이 투기등급 직전까지 강등당한 페트로브라스는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브라질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실정이다.

브라질의 현행 사법 체계에서는 그러나, 부패ㆍ비리 연루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신속한 처벌이 어렵다. 검찰 조사와 재판이 수년간 이어지는 동안 힘있는 사람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 대상에서 빠지기 일쑤다.

앞서 2013년에도 대중교통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패ㆍ비리 척결과 공공 서비스 개선, 복지ㆍ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요구하는 국민 운동으로 번지면서 브라질 사회가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호세프 현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반부패법 제정 등을 약속하는 등 성난 민심을 다독이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브라질이 또다시 대규모 시위에 휩싸인 셈이다. 브라질 정부는 이날 시위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자 2013년과 같은 국민저항운동을 촉발하는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주제 에두아르두 카르도주 법무장관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비리 척결 노력과 비리 연루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약속했다. “정부는 언제든 국민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반대 의견에도 귀를 열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13일에는 여당과 가까운 중앙노동자연맹(CUT) 등이 주도한 친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 24개 주에서 12만 명이 참가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부패ㆍ비리와 신자유주의, 보수 성향의 미디어를 비판하고 정부 전복을 노리는 쿠데타 시도에 반대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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