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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은 폼 잡고 대통령은 국회 통제 … 전형적 정치 담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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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04면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오른쪽)가 11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위원 자격으로 참석해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대통령과 국회가 완전히 한통속이다. 제 정신이 아니다.”(박재창 숙명여대 석좌교수)

비판 여론 거센 국회의원-장관 겸직

“국회의원은 장관까지 해먹으면서 공무원한테만 희생을 강요하면 씨가 먹히겠나.”(인터넷 ID incheon)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불을 지핀 건 9일 열린 유기준(해양수산부)·유일호(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였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인가”라는 추궁에 둘은 약속이나 한 듯 “지금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며 얼버무렸다.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두 후보자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인 내년 1월 중순까지 장관직을 사퇴해야 한다. 답변을 회피함으로써 사실상 ‘10개월짜리 시한부’이자 ‘스펙 쌓기용 장관’임을 인정한 셈이다. “임도 보고 뽕도 따려는 도둑 심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급기야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홍용표(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엔 유 해수부 장관 후보자가 외통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장관 후보자가 또 다른 장관 후보자에 대해 청문을 하는 괴이한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유 후보자는 10분 만에 자리를 떴지만 “개그 콘서트가 따로 없었다”(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 “의원-장관 겸직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김형준 명지대 교수)이라는 지적이다.

총리와 두명의 부총리, 모두 의원 차지
의원-장관 겸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정부부터 줄곧 있어왔다(표 참조). 최근 논란이 커진 건 ‘동시다발성’ 때문이다. 유기준·유일호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함에 따라 이제 현역 의원 출신 각료는 6명이 됐다. 전체 국무위원 18인 중 3분의 1이나 된다. 박재창 교수는 “국무총리(이완구)와 두 명의 부총리(최경환·황우여)까지 정부 핵심 세 자리를 의원들이 독식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게다가 세 명 모두 직전 여당 지도부여서 집권당을 고스란히 내각에 옮겨놓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비율 3분의 1’에 주목했다. “3분의 1이란 기관 정체성 유지의 최소 단위다. 즉 특정 그룹이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 그 조직은 성격이 변하게 된다. 정부 각료의 3분의 1을 현역 의원에게 내줌으로써 입법부가 행정부를 집어삼키는 꼴이 됐다. 이건 대통령중심제도 의원내각제도 아닌 뒤죽박죽 국가 시스템”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외대 서경교(정치외교학) 교수는 “제헌헌법 이후 제3공화국 헌법까지 의원-장관 겸직은 금지사항이었다. 하지만 1969년 이른바 ‘3선 개헌’을 하면서 겸직이 허용됐다. 권력 연장을 위한 입법부 무마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라고 전했다.

의원-장관 겸직은 겉으론 의원이 장관 자리를 가져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실상은 행정부가 의회를 포섭하는 당근책이라는 지적이다.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행정부를 견제·감시해야 하는 입법부 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책무는 실종된 채 행정부를 위해 국회의원 설득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의원-장관 겸직은 내각제 요소의 가미가 아니다. 더 강력한 대통령제”라고 단언했다. “대통령 필요에 따라 의원을 장관으로 차출하고 징발하지 않나. 자연히 의회에 대한 대통령 통제력을 높여 의회주의를 약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의원 개인으로선 장관으로 폼 잡을 수 있고 대통령은 자리 하나 내주고 국회를 통제할 수 있으니 대통령-국회의원 모두에게 유리한, 전형적인 정치적 담합”(박재창 교수)이란 설명이다.

김형준 교수는 “여야가 힘을 합쳐 행정부를 견제하는 게 대통령제의 기본임에도 우리나라는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감싸고 야당은 무작정 공격한다. ‘여당=행정부’ 동일시의 출발점이 의원-장관 겸직이며 이를 통해 여야 간 갈등도 고착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지역구선 숙원사업 해결 기대해 반겨
필요에 따라 의원과 장관을 넘나드는, 현란한 ‘행보’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지난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 통과 시 최경환·황우여·김희정 등 세 명의 국무위원은 나란히 참석해 당원이자 국회의원으로서 한 표를 행사했다.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원의 ‘직무 성실 수행’과는 동 떨어진 채 당이나 계파의 이익에만 민첩하게 반응한 셈이다. 이를 고쳐야 한다며 새정치연합 유승희 의원은 장관 겸직 의원의 의결권 행사와 상임위 활동을 제한하는 이른바 ‘이완구법’을 11일 발의했다.

형평성도 문제다.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으로 가면 비례대표직을 사임해야 한다. 돌볼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에겐 의원직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지역 주민을 대표해야 할 지역구 의원이 장관으로 가면 버젓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장관 발탁이 지역민에겐 오히려 더 좋다”는 지역 이기주의 시각이 만연한 것도 현실이다. 대표적 예가 대구지하철 1호선 경산시 하양 연장 사업이다.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만 해도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경산이 지역구인 최경환 의원이 2009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급선회해, 예비타당성 평가를 통과했다. 지난해 예산 편성과정에서도 하양 연장 사업의 노선 설계비로 국토부는 10억원을 배정했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모시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이를 30억원으로 늘렸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아무리 공평무사했다고 해도 결정권을 쥔 장관 자리에 관련 지역구 의원이 오면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명지대 총장은 “의원이 장관 가면 정부는 곪는다. 정치인에겐 표가 최우선 아닌가. 결국 국가 자원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쓰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국회는 동료 감싸기 … 낙마 사례 ‘0’
최근 의원-장관 겸직이 더욱 횡행하게 된 데는 ‘인사청문회 트라우마’와 무관치 않다. 2000년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의원 출신 국무위원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청문회는 모두 32번. 낙마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의원-장관 겸직 금지 입법 추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4년 이후 네 차례나 있었다. ‘특권 내려놓기’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였지만 결국엔 흐지부지됐다. 최근엔 대선을 앞둔 2012년 7월 추진됐다. 이주영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의원 42명이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2009년에도 같은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을 냈는데 대표 발의자는 진영 의원이었다. 당시 금지 입법에 동참하며 앞장섰던 이·진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의원 겸직 각료로 변신했다.

장관 겸직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대부분 국회의원들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8개월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했던 정병국 의원은 “정무적 판단력과 조직 장악력에서 국회의원은 (장관으로서) 경쟁력이 높다”고 자신했다. ‘이완구법’을 발의한 유승희 의원 역시 “근본적으로 의원이 행정부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3년 전 금지 입법을 추진했던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마저 “봉급을 한쪽에서만 받으니 겸직이라고 문제 삼을 순 없지 않는가”라는 입장이다. 박재창 교수는 이에 대해 “고양이가 자기 앞에 주어진 생선을 버리겠는가. 의원들은 결코 장관 겸직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삼권분립 훼손, 국회의원 의무 불이행 등을 이유로 시민단체가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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