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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 차마다 대형 수사 … “국면전환용 아니냐” 쑤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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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05면

이명박 정부 3년 차였던 2010년 10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해운업체 씨엔그룹을 압수수색했다. 노무현 정부 기간 중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불린 씨엔그룹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년반 넘게 개점휴업 상태였던 대검 중수부가 전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정(司正) 정국’이 시작됐다. 기업비리 수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정·관계 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하지만 검찰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대검 중수부가 중견기업인 씨엔그룹 수사에 나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집권 3년 차 ‘조기 레임덕’ 우려가 커지면서 국면전환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정부, 부패척결 선언하자마자 포스코 수사

검찰 수사관들이 13일 오전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완구 총리 담화 다음날 압수수색
5년이 지난 올해 검찰이 오랜 침묵을 깨고 대형수사에 착수했다. 공교롭게도 또 기업 수사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검 중수부 대신 검찰총장의 주력부대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13일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의 인천 송도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포스코건설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베트남 사업을 하면서 현지 하도급 업체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이후 명맥이 끊겼던 검찰의 대형수사가 재개된 것이다. 혼외자 파문으로 불명예 퇴진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뒤를 이은 김진태 검찰총장은 취임 이후 이렇다 할 대형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검찰 내 대표적 특수수사 전문가라는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인지(認知)수사(검찰이 고소·고발 없이 범죄첩보를 입수해 벌이는 수사)에는 소극적이었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본격화된 대형수사에 대해 “청와대의 ‘그린 라이트(green light)’가 켜졌다”는 말이 나돈다. 압수수색 전날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담화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빨리 ‘조기 레임덕’ 논란에 휩싸였다.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담긴 청와대 보고서 파문이 있었고 올해 들어선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후폭풍 등으로 지지도가 하락했다.

 검찰 안팎에선 “전형적인 국면전환용 기업 수사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정권에서도 수사 선상에 올랐었다. 2012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수사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이 단독입찰로 시공권을 가져간 것을 두고 당시 정권 실세로 불리던 ‘영포 라인’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수부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그룹 전반에 대한 내사를 벌였지만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진 않았다. 이른바 ‘중수부 캐비닛’ 안에 들어 있던 내사자료가 이번 수사에 활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는 대기업 비리와 관련한 방대한 내사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며 “시중에 소문이 돌았던 효성그룹과 CJ그룹이 이미 수사를 받았고 대기업 L·H사와 포스코도 내사자료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집권 3년 차에 벌어지는 검찰의 대형 기업 수사는 묘하게 닮아 있다.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할 즈음, 국면전환용이란 의혹을 받으면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점도 비슷하다.

 2010년 대검 중수부가 씨엔그룹 수사에 나섰을 때도 이명박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를 겪자마자 천안함 폭침사건이 터졌고 국무총리실 민간인사찰 파문이 일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했고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돼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했다.

기업 겨냥 대형 수사, 5년마다 되풀이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봐도 비슷한 국면이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와 이헌재 경제부총리 낙마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집권 3년 차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은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 전격 나선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가 착수했지만 이듬해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맡아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대연정 제의를 거부당하면서 정권의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4·30, 10·26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했던 것도 비슷하다.

 집권 3년 차 검찰의 대형수사들은 다른 대기업 수사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행담도 개발 의혹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던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대기업 수사의 단초를 마련한다. 이듬해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 정권 말까지 대기업 수사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씨엔그룹 수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대검 중수부는 ‘서민 피해 회복’을 내걸고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착수했다. 이후 하이마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등 기업 수사는 계속됐다.

 검찰의 기업 수사가 ‘국면전환용’으로 의심받는 이유는 뭘까. 현직 시절 ‘특수통’으로 불렸던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기업 수사는 타깃이 확실하고 유탄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부정부패 척결이란 대의명분이 있을 뿐 아니라 비자금 유입경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경고 신호를 주기 때문에 정권 입장에선 불리할 게 없다”고 말했다.

“비리 척결,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이명재 민정특보-우병우 민정수석으로 이어지는 청와대 ‘민정 라인업’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이번 수사를 기획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수사를 맡은 조상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 직전 대검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을 지낸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은 옛 대검 중수부 중수1과장으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장으로 불렸다. 5년 전, 10년 전과 다른 건 재·보궐선거(4월 29일)가 치러지기 전 수사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선 “검찰 사정활동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정부패와 비리척결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집권 3년 차에 대규모 기업 수사가 반복되는 걸 단순히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찰의 사정 기능이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의심받는다면 국민이 어떤 검찰권 행사에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느냐”며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주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수사가 계속 이어질지 지켜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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