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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사드 문제, 미·중이 먼저 대화로 풀어야 AIIB는 우리 입장 명확하게 밝힐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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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08면

지난달 26일 국회에선 새로운 역사가 또 하나 쓰였다. 나경원(52·사진) 새누리당 의원이 헌정 사상 여성 의원으론 최초로 외교통일분과 상임위원장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임 유기준 위원장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물러난 여당 몫의 외교통일위원장 후임을 놓고 당내 경선 끝에 나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여성 첫 국회 외통위원장 나경원 의원

나 위원장은 새누리당 내에서 스타 의원으로 꼽혀 왔다. 판사 출신으로 2002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권유로 정치에 뛰어든 이후 각종 당내외 행사와 유세 등에서 당의 얼굴로 활약했다. 우리 국회에서 여성 중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나 신임 위원장을 12일 중앙SUNDAY가 만났다.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쪼갠다고 들었다. 그렇게 일정이 많나.
“이 인터뷰가 오늘 열 번째 일정이고 아직 3개 더 남았다. 바빠진 일정 탓에 토요일을 ‘민원의 날’로 정해 지역구 민원을 한데 모아 그날 받는다. 외통위원장이 되니까 외국 국빈·사절 접견, 각국 대사관 행사 참석과 같은 의전 일정이 굉장히 많더라.”

-위원장이 되자마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바로 다음날 외통위 간담회를 열어 외교부 차관으로부터 경과를 보고받았다. 이후 미 상·하원 외교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유감을 표명하고 한·미 관계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나서 리퍼트 대사를 문병했다. 외교위원장 서한에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을 썼다고 얘기해 줬더니 나중에 퇴원하면서 그 표현을 써먹더라.”

-여야 대표에 대통령까지 문병한 것에 대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정도면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다. 나중에 ‘석고대죄’ 퍼포먼스 같은 해프닝 때문에 그렇게 비쳐지지 않았을까.”

스페셜 올림픽 때 스포츠 외교 경험
나 위원장은 지난해 7·30 보궐선거로 원내에 재입성한 뒤 처음으로 외통위에 들어갔다. 인터뷰 중엔 ‘동맹’이나 ‘동반자 관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같은 용어 선택에서 다소 헷갈려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대북 문제에 문외한이라는 비판도 있다.
“외통위원을 해본 데다 원외 기간 동안 퍼블릭 외교 경험도 있다. 2013년 평창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장애인 스포츠 외교를 많이 펼쳐 왔다. 예전부터 국제관계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면 잘 안 믿겠지만 대학 때 국제법학회 활동도 하고 국제법 전공으로 석사도 받았다.”

-첫 여성 외통위원장이다. 여태껏 왜 여성 외통위원장이 나오지 않았을까.
“외통위를 흔히 상원이라고 한다. 다선 의원들이 대부분 속해 있어서 그런데 여성 중진 다선의원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 중 내가 최다선(3선)이다. 여성 의원들은 비례대표 한 번 하고 재선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새누리당에서 17, 18대 여성 비례대표 중 19대에 살아남은 사람이 나와 김을동 의원 둘밖에 없다.”

새누리당에서 최다선 여성의원
나 위원장은 지난 8일 한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에 대해 “(배치) 필요성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며 “국익 입장에서 배치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중국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당내에서 사드 배치의 공론화를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야당에선 ‘셀프 조공’이란 비난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청와대는 11일 “(사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3No(No Request, No Consultation, No Decision)”라며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언급이 논란을 촉발시켰다. 미국 쪽에서 환영할 만한 발언으로 보이는데.
“내 얘기는 지금 당장 배치해야 한다, 아니다 보다 원칙적으로 이 무기 체계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 입장에 공감한 것이었다. 중국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반발하는데 배치를 원하는 미국이 먼저 중국과 ‘그게 아니다’란 걸 대화로 풀어야 한다. 우리 정부도 처음부터 ‘(배치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정쩡한 태도로 계속 불필요한 논쟁을 키워간다는 우려가 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경우 중국이 우리가 들어오길 원했는데 미적미적하다가 못 들어갔다. 그 사이 인도·인도네시아가 가입의사를 밝혔다. 이제 중국으로선 한국의 (가입) 필요성이 예전만큼 절실하지 않게 됐다. 그만큼 우리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미·중 간 이런 이슈들을 놓고 우리가 좀 더 신속하게 국익을 계산해 명확한 입장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 경색이 오래가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아베 정권의 우경화가 경색의 원인인데 일본이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과거사 문제는 원칙을 갖고 대응하되 정상회담은 이와 분리해 유연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올해 6월 22일이 양국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그 전에 교류 활성화 조치들을 먼저 내놓으면 어떨까.”

-내년 총선까지 1년밖에 남지 않은 위원장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은.
“북한인권법 통과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그간 정책과 발언을 보면 상당히 보수·우파적이란 평가다.
“국가보안법이라든지 이념적 문제에 대해선 강고한 보수다. 하지만 인권이나 복지 부분은 상당히 진보적이라 생각한다. ‘무상’이 진보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되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것이 진보다. 복지의 목적은 부의 불평등 해소인데 공짜로 다 주면 불평등이 해소되겠나.”

-외통위원장이 된 것을 두고 대선까지 바라보는 행보란 시각도 있다.
“3선 의원이 됐으니까 그에 걸맞게 해야 할 일들이 있지 않나. 그런 과정으로 보면 된다. 지명직 최고위원 같은 당직을 하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자리인 상임위원장을 해보고 싶었다.”

시장 선거 무모하게 나섰다 고생
-‘그런 과정’이라 하면.
“차근차근 일을 하다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요즘엔 ‘필요로 할 때’에다가 ‘내가 잘할 수 있을 때’ 하자는 생각을 보탠다. 옛날엔 필요로 한다고 해서 무모하게 했다가 고생한 적이 많다.”

-언제 그런 고생을 했나.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가 그랬다. 다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그러니 ‘그래 내가 해야지’ 하면서 나섰었다.”

나 위원장은 재선 의원 시절인 2011년 8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박원순 야당 후보에게 패배(46.2% 대 53.4%)했다. 친이계로 분류되던 그는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한 이듬해 19대 총선 때 “어차피 당이 공천 안 할 것”이라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3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내다가 지난해 7월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3선에 성공했다.

-보선 땐 억센 모습도 보여 ‘진짜 정치인이 됐다’는 소리도 나왔는데.
“제대로 고생을 해봐서 그렇게 됐나 보다(웃음). 앞으로 잘 지켜봐달라.”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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