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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조깅속도 ‘시속 8km’가 당신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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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25면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젊어진다. ‘박카스의 젊음’(1884년). 프랑스의 화가 윌리엄 아돌프 뷔게로의 작품.

단체관광에서 처음 만난 두 여성에게 필자의 지인이 ‘사교형 멘트’를 던졌다.

<38> 회춘의 과학

“엄마가 언니 같네요.”

그러자 “시력이 좋지 않은 걸 보니 나이가 꽤 드셨나 봐요”란 앙칼진 독설(毒舌)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로부터 날라 왔다. 두 여성은 같은 또래 친구였다.

같은 나이인데 왜 누구는 ‘딸’처럼 젊게, 누구는 ‘엄마’처럼 나이 들어 보일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란 영화 속의 주인공은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해마다 젊어진다.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젊어진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현실에선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간 것처럼 젊게 보이며 살고 싶을 뿐이다. 90세의 할머니에게 “환갑도 안 돼 보인다”고 하면 입이 함박만 해진다. 내가 몇 살로 보일까? 중년이 되면 외모에 신경이 점점 더 쓰인다. 단순한 외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은 몸 상태”란 종합검진 성적표를 받은 날엔 세상을 얻은 듯하다. 나이보다 몸을 젊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 최근 과학자들은 그 해답을 찾았다. 답은 운동의 강도(强度)에 있었다.

젊다고 생각하고 살면 실제로 장수
올해 2월, 『미국 의학협회지』(JAMA)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젊다고 생각만 해도 수명이 늘어날 수 있다. 평균 나이 65세인 남녀 6489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8년 뒤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스스로 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수명이, ‘난 늙었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1.7배 길었다. DNA(유전자)로 측정한 ‘생물학적 나이’도 젊어졌다. 왜 생각만으로도 젊어지는 걸까?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뇌에서 찾고 있다. 다른 동료보다 젊다는 생각은 뇌의 단기(短期) 사건 기억력을 높인다. 어제 누구랑 어느 식당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억하는 해마(뇌의 기억중추)의 단기 기억 뇌세포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높아진 단기 기억능력은 기억을 오래 잘 유지하게 한다. 기억력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충만 된다. 그래서 좀 더 도전적인 활동을 하게 되고 운동량을 증가시키며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난다. ‘난 아직 젊다’는 생각이 쉬 위축되고 소심해지는 50대 중년을 자신감이 가득 찬 30대 청년으로 바꾼다. 필자도 ‘난 젊다’란 마음으로 매사에 임할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보다 젊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올까? 몸 상태일까 외모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중강도 운동으로 젊어진 피부. 표피(두께 0.1㎜), 특히 각질층이 얇아지고 진피(두께 1㎜, 콜라겐·보습인자 함유)가 두꺼워진다.

텔로미어 길이로 신체 나이 판정 가능
산을 오르면서 과거와는 달리 숨이 가쁘면 나이를 실감한다. 앉았다 일어설 때 ‘핑’ 돌면 내가 벌써 이리 됐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신체 나이를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신체 상태, 즉 체력과 심혈관 상태다. 심혈관 질환은 사망 원인의 30%를 차지한다. 특히 혈관 나이가 중요하다. 3개의 혈관막(외막·중막·내막) 중 자연 노화는 중막부터 시작된다. 콜라겐·엘라스틴 등 탄력 섬유가 줄어들면서 혈관 벽이 딱딱해진다. 이른바 동맥경화증의 시작이다. 그 결과 피를 펌프질하는데 힘이 들고 혈압이 슬슬 오른다. 심장에 조금씩 무리가 가해진다. 이런 자연 노화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생활습관 탓에 오는 죽상경화증이다. 콜레스테롤·혈전이 혈관 내막의 상처에 쌓이면 ‘기름 때’가 낀다. 죽처럼 끈끈한 물질이 떨어져 나가 뇌·심장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심장마비로 숨질 수 있다. 뇌로 가는 경(頸)동맥 의 혈류 속도·혈관 두께를 초음파로 측정하면 자신의 혈관 나이를 알 수 있다.

각 장기의 노화 정도를 병원 검사로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당신의 심장은 몇 살, 간(肝)은 몇 살입니다”라고 정확히 말해줄 수 있다. 이런 부위별 검사 말고 한 번의 검사로 신체 나이를 판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신체 나이를 알려주는 한 지표는 ‘텔로미어(telomere, 말단소립)’의 길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chromosome)의 양끝 부분이다. 운동화 끈이 닳지 않게 하는 플라스틱 매듭처럼 텔로미어도 염색체를 보호한다. 텔로미어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닳아 줄어들면 결국 세포분열도 멈춘다.

영화 속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이미 80세의 외모로 태어났다. 이 희귀한 조로증(早老症) 환자의 생체시간은 정상인보다 7~8배 빨리 흘러 텔로미어도 급격히 줄어든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은 사람은 각종 암으로 죽을 확률이 1.5~3배 높아진다. 치매의 정도에 따라서도 텔로미어의 길이가 달랐다. 외모를 결정하는 것은 얼굴 피부의 세포 상태이고 이는 텔로미어 길이와 직결돼 있다.

얼굴에서 나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부 중년 남성의 탈모·흰머리를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나이를 보여주는 두 가지 지표는 눈가의 주름과 피부색이다. 눈가의 주름은 얼굴 전체 면적의 30%에 불과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부위다. 주름이 생기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 세포가 늙어가는 자연 노화와 자외선에 의한 광(光)노화다. 피부에서 수분 증발 속도는 40대가 20대의 1.3배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 장벽 성분이 60%나 감소하고 보습 성분(히알루론산)이 줄기 때문이다. 또 콜라겐·엘라스틴·피하지방 등 피부에 탄성을 주는 물질이 줄어들면서 눈 아래의 근육이 처진다. 하회탈의 미소를 닮은 주름살이 50대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그래서다.

젊게 보이고 싶다면 젊다고 생각하고 중강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성형·보톡스 보다 안전한 운동요법
나이 든 피부에 자외선이 더해진다면 최악의 상태다. 바다에서 장시간 자외선을 받은 어부의 얼굴은 족히 10년은 더 들어 보인다. 이런 주름보다도 눈에 더 잘 띄는 것은 피부색의 균일도(均一度)다. 피부색은 세 가지 물질, 즉 멜라닌 색소·헤모글로빈·베타카로틴에 의해 결정된다. 멜라닌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세포의 유전자를 보호해 주는 검은색 색소다. 헤모글로빈은 피부 아래의 혈관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붉은색 색소다. 베타카로틴은 당근에 풍부한 노란색 색소다. 이 세가지와 수분·히알루론산이 진피층에 충분하면 피부는 스스로 광(光)이 나는 이른바 ‘물광’ 피부가 된다.

젊을 때는 피부색이 균일하다. 20대엔 태양에 그을려도 피부 세포가 금새 자라서 전체적으로 골고루 ‘태닝’이 된다. 반면 50대가 되면 피부색이 얼룩덜룩해진다. 검은 색 반점은 멜라닌 생성 세포가 비(非)정상적으로 몰린 결과다. ‘저승 꽃’이라 불리는 ‘노인성 검버섯’이 생기면서 피부는 지저분해진다.

『끌리는 얼굴은 무엇이 다른가』란 책의 저자인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페렛은 얼굴만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얼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든 부분에 의해 전체 나이가 결정된다. 정상적이라면 얼굴의 노화는 골고루 진행된다. 주름도 본인이 특별히 상을 찡그리지 않는 한 전체에 골고루 생긴다. 따라서 성형을 통해 젊게 보이려면 모두를 뜯어 고쳐야 한다. 젊은 외모를 갖기 위해 거금을 들여 ‘대공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또 보톡스 주사를 맞으면 얼굴 근육 운동이 잘 안 돼 무표정한 얼굴이 되기도 한다. 세포를 늙지 않게 만들지 않는 한 주름은 계속 생기고 얼굴은 반점으로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잘못된 수술은 되돌릴 수 없다.

피부는 신체의 창(窓)이다. 따라서 신체 나이를 젊게 유지하는 것이 젊게 보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과학자들은 그 답을 운동에서 찾았다.

염색체의 양 끝에 위치한 텔로미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짧아진다.

적당한 운동이 텔로미어 길이도 바꿔
지난해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에서 실시된 연구 결과, 운동은 피부를 젊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스포츠과학회에서 발표됐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연구팀은 65세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매주 3회씩(1회당 30분가량) 운동을 시켰다. 3개월 뒤 이들의 피부 상태를 조사했다. 운동한 그룹에선 피부 재생이 빨라졌고 각질은 얇아졌으며 진피는 두꺼워졌다. 피부 나이가 65세에서 20~40대로 젊어진 것이다. 피부 세포에선 ‘마요킨 IL-15’란 물질이 50% 증가했다. 이 물질은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에서 생성돼 다른 부위의 세포를 ‘씽씽’ 돌리는 역할을 한다. 운동이 피부 세포 나이를 거꾸로 돌린 셈이다. 성형 수술대 위에 눕기보다 한강변을 달리는 것이 젊어지는 데 더 유효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얼마나 달려야 할까?

금년 2월 『미국대학심장학회지』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高)강도 보다는 중(中)강도의 운동이 수명 연장에 더 효과적이다. 1000명의 달리기 애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당 2.5시간 이하로 조깅한 사람이 가장 장수했다. 반면 4시간 이상 뛴 사람은 운동과 담을 쌓고 산 사람과 비슷한 사망률을 보였다. 연구팀은 뛰면서 옆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는 속도인 시속 8㎞를 ‘장수 운동 속도’로 추천했다.

운동은 사망률을 낮출 뿐 아니라 텔로미어 길이도 변화시켰다. 중년 남성 782명의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해봤다. 고(高)강도 운동 그룹과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그룹의 텔로미어 길이가 거의 같았다. 운동량이 중간 정도였던 그룹의 텔로미어 길이가 가장 길었다. 다시 말해 가장 ’젊은 상태‘였다. 또 소파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텔로미어는 짧아졌다. 결국 세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은 운동을 적당히 하는 것이다.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안 되는 이런 U자형의 반응은 세포에서 자주 관찰된다. 이른바 ‘호르메시스(hormesis)’ 이론이다. 동양의 중용(中庸)에 해당한다. 운동·식사·음주, 심지어는 스트레스도 과하거나 전혀 없는 것보다 중간 정도가 건강에 가장 이롭다는 의미다.

최근 고(高)강도 얼굴 성형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1인당 성형 횟수가 세계 1위인 한국은 성형천국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평생 속을 끓일 일도 생긴다. 젊게 보이려면 고강도 미용수술 대신 중강도 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보톡스 주사를 맞기 보다 보습제·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좋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밝은 꽃 한 송이를 양복에 꽂기만 하면 누구라도 몇 년은 젊어진다”고 했다. 꽃 한 송이를 옷에 꽂는 센스로 젊게 입자. 자포자기형 중년이 아닌 지속노력형 젊은 오빠가 되자. 젊게 보이고 싶다면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달리자. 젊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삶의 기술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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