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대작 ‘태풍’ ‘무극’ 주연 장·동·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알랭 들롱이 언젠가 한국에 와서 그랬대요. 그 눈빛의 비결이 뭐냐고 기자가 물으니까, '눈빛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담는 것'이라고요. 연기에서 기본적인 기술은 필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봐요. 진정성이죠. 관객들에게 이 연기가 진심이라고 믿게 만들려면, 그런 진심을 평소에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근조근 연기론을 들려주는 배우 장동건(33)씨는 전보다 마른 얼굴에 이목구비가 한결 뚜렷해졌다.

'꽃미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미남배우로 공인된 그이지만, 이제는'대작 배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한 예로, 최근 그가 동원한 관객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와 '친구'(2001년) 두 편만으로도 2000만 명에 육박한다.

그의 이런 저력이 신작 '태풍'(감독 곽경택. 15일 개봉)에서는 어떻게 드러날까. 규모로는 지난해 한국영화 사상 최대 제작비를 기록한 '태극기…'를 앞지르는 대작이다. 그는 남북 모두에서 버림받은 탈북자 출신의 현대판 해적'씬'역할을 맡아 자신을 추격하는 해군 특수부대 장교 '강세종'(이정재)과 대결을 펼친다. 체중을 7㎏쯤 줄인 것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물론 자연적인 체중감소는 이보다 먼저 시작됐다. 역시 대작인 천카이거 감독의 판타지멜로'무극'을 중국에서 촬영하면서 낯선 음식에, 무거운 의상에, 7개월을 강행군한 덕분이다. 두 편 모두 그가 주연이라 '무극'은 국내 개봉을 내년으로 미뤘지만 중국 등에서는 이달 중순 개봉된다. 이제 그는 '아시아의 배우'다. '태풍'얘기부터 들었다.

"곽경택 감독은 제 은인이죠. '친구'에서는 저도 몰랐던 제 속의 모습을 끄집어냈으니까요. 두 번째 같이 일하니까 현장에서 제 의견을 얘기할 때도 오해 없이, 격식 없이 편했어요." 대신 그의 연기를 너무 잘 아는 터라 오히려 어렵기도 했다. 웬만한 연기에는 "어, 그건 '친구'때랑 비슷한데"하면서 쉽게 오케이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극중에서 장동건.이정재 두 주인공이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대사가 딱 한 줄인데도 무려 20여 번을 거듭 찍었다.

특히 곽 감독은 '친구'때부터 남자배우들에게 서로의 출연 장면을 현장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은근히 경쟁을 부추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도 그런 작전을 쓰시더군요. (웃음) 사실 상대 배우보다 돋보이고 싶은 게 배우의 솔직한 욕심이에요. 현장에서 감추지 않고 드러냈죠. 단, 서로 상대가 있는 자리에서요. 그게 제가 투톱(남자주연이 두 명인 것)영화를 거듭 찍으면서 익힌 룰이에요. 예컨대 이정재씨가 너무 멋있게 나온 장면이 있으면 제가 모니터를 보면서 애교를 부렸죠. 이건 커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이정재씨가 이번 영화에 들인 공도 만만치 않다. 특히 웃통 벗고 구보하는 딱 한 장면을 위해 세 끼를 삼계탕의 닭 가슴살 부위만 먹으면서 몸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본래 제일 초반에 촬영하려던 장면인데, 뒤로 미뤄달라고 하더군요. 속으로 놀랐죠. 아니, 저 녀석이 얼마나 더 열심히 하려고, 하면서요. 결과적으로 그런 선의의 경쟁이 좋았어요. 두 인물 간에 긴장이 팽팽해야 하는 영화거든요. 그 장면을 결국 거의 촬영 막바지에 찍었는데, 제가 보기에도 멋있던데요."

한편 다른 나라 배우.감독과의 작업인 '무극'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패왕별희'를 보면서 천카이거 감독은 인생의 수많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참 치열하게 표현하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의 카리스마나 장악력은 이제까지 겪어본 감독 중 최고예요. 배우에게 장면마다 의도를 한참 설명하고 납득시킨 뒤에야 촬영을 시작해요. 거의 매일 연기학교에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한국어로 일하면서도 '이게 감독이 원하는 걸까'싶을 때가 많았는데, 통역을 거치면서도 이번에는 그런 불안이 전혀 없었어요."

띠동갑뻘인 일본배우 사나다 히로유키하고는 서로 '브러더'(형제)라고 부르는 친구가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물론 좀 걱정스럽기는 해요. 중국어로 연기하는 제 생소한 모습을 국내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이제는 대작 배우로 공인된 그이지만, 사실 그가 대작만을 고집한 것도, 그의 대작이 모두 성공한 것도 아니다. 그는 "돈이 많이 드는 큰 영화의 주연을 맡는 건 뿌듯하면서도, 배우가 지지 않아도 될 부담이 크다"고 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년)도 당시 한국영화 최고 제작비를 기록했어요. 관객이 250만 명 들었고, 본전은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제작비에 견주니까 다들 실패로 인식하죠.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 연출이나 연기가 어떤지를 떠나 결국 관객 수로 평가하게 되잖아요. 그런 게 부담이죠."

그 직후 그는 낮은 출연료를 자청하며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주변에서 말리기도 하고, 대단한 일인 양 말하기도 했는데, 저는 쉽게 결정했어요. 많은 사람이 보도록 기획된 영화는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선이 좀 좁죠. 그런 걸 깨고 싶었어요. 배우에게 흥행부담도 없었고요."

1990년대 초 처음 TV로 데뷔한 그는 '우리들의 천국'이나 '마지막 승부'같은 청춘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한결 남성적이고 선 굵은 연기로 돌아선 지금, 그는 "나이 먹는 건 두렵지 않다. 그 나이에 맞게 멋있게 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 연기공부를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진학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제는 일상에서 스스로 포착하는 대화나 감동이 훨씬 더 연기의 저력이 된다고 믿는다.

최근 그는 광고 출연료, 전속계약금 등 올 한 해 수입이 67억 여원이라는 보도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하도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와 "집전화를 받을 수 없을 정도"였단다. 할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겠죠"라고 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