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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토지' 박경리 선생 팔순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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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소설가 박경리씨가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팔순 잔치에서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사위 김지하씨, 딸 김영주씨, 박씨. [연합뉴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의 팔순 잔치가 29일 낮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라일락룸에서 열렸다.

환갑도, 칠순 잔치도 치르지 않았던 박씨는 100여 명의 하객을 보곤 상기된 표정으로 "평생 생일을 모르고 살았는데 어리둥절하다. 자식 체면 때문에 하라고 했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가족과 평소 가까웠던 사람 스무 명 정도와 조촐한 잔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예상 밖으로 많은 손님이 초대되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박씨는 "솔직히 여기에 선 것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아 염치가 없고, 작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는데도 보상을 못받고 떠난 사람에 비해 나는 한 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인 시인 김지하씨, 외손자인 김원보.세희 형제 등 가족들과 문인, 정.관계 및 학계.언론계 인사 등 지인들이 참석해 박씨의 건강과 장수를 축원했다.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정현기 연세대 교수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능동성을 잃으면 자아가 죽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선생은 80년간 삶을 지켜오면서 작품과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존재가치의 영성과 드높은 존엄성을 드러내 왔다"고 평했다.

이어 국악인 김영동씨가 이끄는 경기도립국악단이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고, 장석효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청계천 복원에 대한 박씨의 공로를 기리는 패를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신해 전달했다.

이수성 전 총리는 "평생 가장 감명깊게 읽은 소설로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과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들 수 있다"면서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박경리 선생이라면 찬동할까'라고 생각할 만큼 선생은 내 삶의 좌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두 달반 동안 토지문화관에서 집필 활동을 했던 소설가 박범신씨는 "밤늦게 토지문화관으로 돌아올 때 깜깜하고 막막한 깊은 산 속에서 오직 선생의 2층 서재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면서 "그 불빛을 등대처럼 생각하며 문학의 길을 찾으려 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수성 전 총리, 이부영.김상현 전 의원, 김한길 의원, 김병수.정창영 연세대 전.현직 총장, 유재천 한림대 교수,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성우 전 한국일보 주필,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진의장 통영시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김민기 학전 대표, 영화감독 이광모씨, 작가 오정희.강석경.황지우.강형철.김남일씨 등이 참석했다.

박씨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5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그동안 소설 '표류도'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등 숱한 작품을 발표했다. 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대하소설 '토지'는 집필을 시작한 지 25년 만인 94년 전체 5부를 완성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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