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3) 제80화 한일회담(142)-국적 설득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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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일본정부의 북송결정 이틀전인 2월11일 이대통령에게 그실행저지를 위한 방안을 진언했다.
일본이 북송실행을 위해 적십자국제위원회(ICRC)의 중재를 요청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한일현안에 정통한 금용식주불공사를 제네바에 파견해 ICRC간부들이 일본요청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공작하는게 필요하다는 건의였다.
그리고 한적도 일본의 북송실행은 재일한국인을 북괴의 노예로 만들려는 기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강력한 성명을 ICRC에 보내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이대통령은 김공사에게 보낼 본부의 임장설명훈령을 검토한 후 훌륭한 방안이라며 일본대표가 제내바에 도착하기 이전에 김공사가 제네바로 가서 ICRC간부들을 설득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ICRC본부가 있는 제네바는 서울과 동경측의 첨예한 격돌장이 됐다. 일본은 2월14일 북송협조를 요청하는 전문을 ICRC에 보냈고 ICRC도 인도적차원에서 협조할 용의를 비공식적으로 밝혔다.
일본은 20일「이노우에」(정상송태낭) 일적외사부장을 재네바에 파견, ICRC의 북송관여에 대한 세부사항을 토의토록 조치했다.
「이노우에」 대표가 제네바에 도착한 21일이전에 김공사는 비밀리에 제네바에 도착해 북송이 자발적이라는 일본측주장의 허구성, 재일한국인의 역사적 특수성, 한일회담현황등을 설명, 이문제에 ICRC가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후지야마」외상등 북송추진자들은 애초 ICRC의 협조를 얻는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우리측 설명을 들은 ICRC가 신중한 자세로 임하자 크게 당황했다.
ICRC는 거주지선택의 자유라는 기본적 인권의 대전제에서 북송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거기에는 엄격하게 자원의 원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ICRC간부들은 「이노우에」대표와의 연일 협조방안을 협의한 자리에서 북송에 관한 ICRC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①현거주지와 목적지의 적십자 및 정부당국이 다음의 조건에 동의한다면 ICRC는 한국인의 귀환희망을 검토하고 그의 거주지선택에 대해 자유로이 표시한 의사를 확인키위해 특별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함.
②일적은 귀국신청을 접수키위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신청을 ICRC사절단에 제출하며 사절단과 신청자간의 연락이 되도록할것.
③귀환자의 화물·금전·재산의 처리등은 양적십자와 귀환자협정에 의거함. ICRC는 이 문제처리를 위한 중개자가 됨.
④ICRC는 통과여권사증(중공경유등의 경우를 말함) 획득을 원조할 용의가 있음.
문제는 ②항에 있었다. 일본측도 북송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ICRC의 사전심사를 요청했으나 ICRC가 정작 북송희망자의 개별심사방안을 들고나오자 적이 당황했다.
왜냐하면 북한과 조총련이 이에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송희망자의 상당수가 그들의 강요와 협박·회유에 의한 결과임이 탄로날 개별심사에 결코 찬성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북한과 조총련은 ICRC의 조건으로는 북송에 합의할 수가 없다고 버텼다. 일본은 자기들이 북송을 합리화하기 위해 짜낸 함정에 스스로 빠지는 자업자득의 절망적 형세였다.
나는 2월2일 이대통령에게 일적의 ICRC공작에 대응하고 ICRC의 입장을 우리측에 유리하게 이끌기위해 한적대표의 파견을 건의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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