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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감세법안… 돈 쓰는 법안 잔뜩 내놓고 "세금 깎아 주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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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문가들은 수백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동시에 감세법안을 앞다퉈 내는 행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계명대 윤영진 교수는 "돈 쓸 곳은 수없이 만들어 놓고 뒤로 세금을 앞다퉈 줄여 주면 나라 살림은 어떻게 꾸려 갈 것인가"라고 말했다.

◆ 조세법 10건 중 7건이 감세안="60세 이상 고령자가 공시가격 15억원 이하의 주택을 소유한 경우 종합부동산세를 면제해 주자."(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의 부동산세법 개정안)

"유아용 기저귀와 생리대에 부가세 영세율을 적용하자."(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의 조세특례법 개정안)

17대 국회 들어 의원이 발의한 조세법안(국세기본법 제외) 157건의 72%(113건)가 세율 인하, 세금 공제 확대, 과표 조정으로 결과적으로 세금을 깎는 감세법안이다. 이만우(경영학) 고려대 교수는 "의원 발의 법안들이 모두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법안과 합쳐지거나 조정과정을 통해 결국 조세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세수 기반을 무너뜨리는 무리한 의원입법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누더기 되는 조세특례법안=의원이 발의한 조세법안 중 비중이 큰 것은 조세특례제한법이다. 전체 조세 관련 법안의 38.8%(61건)에 이른다. 조세 감면 규정을 점진적으로 없앤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과 반대되는 현상이다. 대표적 유형은 조세특례 시한이 끝나는 일몰(日沒) 조항을 다시 연장하는 것이다. 모두 여덟 건으로 여섯 건은 농업용 기자재나 석유류에 대한 면세 시한을 늦춰주자는 내용이다. 두 건은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 시한을 연장하는 법안이다. 참여연대는 17일 논평을 통해 "최근 5년간 일몰 시한이 돌아온 법안 178개 중 단 48개(27%)만 폐지되고 130개(73%)가 재연장돼 일몰제도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며 "일몰이 도래한 조세 감면 조항은 원칙적으로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관리비나 경비.청소용역에 부가세를 면제해 주자는 특례법안도 네 건이나 된다. 이 같은 특례규정에 의한 세금감면액은 2001년 13조7300억원에서 계속 늘어나 지난해는 18조627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례법안은 형평성과 효과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실은 김희선 의원이 발의한 유아용 기저귀와 생리대에 영세율을 적용하자는 조특법 개정안에 "과세하고 있는 다른 생필품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기저귀에 영세율을 적용할 경우 인하효과는 자녀당 월 8000~1만원 정도로 출산 유인 효과도 불투명하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고유가 속에 유류세를 내리자는 법안도 많았다. 17대 국회의 유류 관련 세금법안은 모두 17개로 이중 감세법안은 14개, 증세법안은 3개였다. 유류 관련 감세법안은 한나라당이 가장 많고(일곱 건), 열린우리당도 여섯 건이나 제출했다. 민주당도 한 건을 발의했다. 증세법안은 모두 열린우리당이 제출했다.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실은 "택시나 장애인 차량에 공급하는 LPG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줄 경우 화물차나 버스 업계 등에서도 면세를 요구, 전체 세수체계에 구멍이 생긴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 부동산세 감면 주도하는 한나라당=정부가 부동산값을 잡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는 부동산 관련 세금 감면법안이 아홉 건(농지나 법인의 토지취득 관련 법안 제외) 제출됐다. 이 중 여섯 건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감세법안이다. 이혜훈 의원은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신설로 세금 부담이 늘었다는 이유로 1세대 1주택 소유자에게는 전부 종부세를 면제해 주자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양도세율과 취득세.재산세율을 낮추는 법안도 제출한 상태다. 이 의원은 대신 10월 들어 1세대 2주택 이상 소유주에게 양도세를 중과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종구 의원은 60세 이상이 소유한 15억원 이하 주택은 종부세를 면제해 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고령 노인의 세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다. 한나라당은 이 밖에도 지난달 부동산 등의 등록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정부와 여당이 보유세 강화에만 주력할 뿐 거래세 인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게 한나라당의 생각이다.

정철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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