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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연말정산 결정세액, 눈 크게 뜨고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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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견기업 차장 천모(42)씨는 올 연말정산 결과 자신의 소득세가 1년 전보다 상당히 늘어났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지난달 월급을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지난해보다 환급액이 오히려 30만원 늘어난 것을 보고 희희낙낙했다. 주변에서는 모두 환급액이 줄었다고 아우성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 지난해와 올해 결정세액의 차이를 비교하고나서부터다. 그의 결정세액은 99만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환급액이 늘어난 건 회사에서 매달 월급날 원천징수로 세금을 미리 더 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에 나오는 원숭이가 된 느낌”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지난달 월급봉투를 받아든 봉급생활자 대부분이 연말정산 결과를 받아들고 잠자코 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 동료에게 연봉 공개를 금지하는 회사가 많아 내놓고 밝힐 수도 없지만, 환급액이 예상보다 적게 줄어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주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은 환급액이 크게 줄어든 경우다. 반면 환급액이 소폭 줄어들거나 오히려 늘어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환급액만 보고 즐거워하거나 분통을 터트릴 일은 아니다. 환급액만 봐서는 세금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질 세금 증가액은 결정세액을 봐야 알 수 있다. 결정세액은 2월 급여명세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를 확인하려면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 연말정산 이력을 봐야 한다.

 결정세액은 연말정산을 거쳐 한 해 소득에 대해 납부해야 할 최종 세금을 의미한다. 계산식은 간단하다. 우선 연봉에서 비과세소득·근로소득공제를 제외한 근로소득금액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빼면 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과세표준이 나온다. 여기에 세율을 곱해 세액이 산출되면 다시 세액공제를 하고나서 확정되는 금액이 결정세액이다.

 최근 본지에 연말정산에 따른 충격을 호소해 온 13명의 봉급생활자를 조사해본 결과, 대다수인 12명은 지난해보다 결정세액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외자 한 명 역시 보직이 바뀌면서 수당이 줄어드는 바람에 과표가 낮아져 세금이 줄어들었다. 사실상 근로자 대다수의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그래서 환급액은 별로 안 줄었는데 체감 급여가 줄었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이 많다.

 특히 연봉 5500만원 초과 중산층의 세부담은 정부가 평균치라면서 밝힌 규모보다 많은 경우가 속출했다. 정부는 연봉 9000만원이면 세부담이 평균적으로 90만원가량 늘어난다고 추정했었다. 그러나 시중은행 문모(46) 부부장은 결정세액이 563만원 증가했다. 1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그의 결정세액이 1년 사이 1416만원에서 1979만원으로 뛰면서다. 그는 “연봉은 소폭 늘었는데 세액공제 적용으로 과표 상승 효과가 커서 세부담이 급증한 것같다”며 “개인적으로 공제받을 게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1년 만에 한달치 월급만큼 세금이 급증한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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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어난 연봉 절반이 세금으로 나간 경우도 있다. 시중은행 김모 부장(47)은 지난해 연봉이 600만원 올랐다. 결정세액은 292만원 상승했다. 소득이 많이 올랐지만 세액공제 적용으로 과표도 크게 상승하면서 연봉 인상액의 절반이 고스란히 세금으로 나간 셈이다. 대기업 부장 최모(51)씨는 이번 월급명세서를 받아보고 자신이 ‘복합골절’을 입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 역시 처음엔 “나름 선방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70만원이었던 환급액이 많이 줄어들긴 했어도 이번에도 130만원가량 돌려받아서다. 그러나 결정세액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1년 전에 비해 무려 371만원 늘어났다. 연봉은 9500만원으로 2년째 동결된 상태다.

 그의 세금이 급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세액공제 방식이 적용되면서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구간으로 과표가 올라갔다. 과표는 6~38%까지 누진적으로 적용된다. 9000만원대 연봉은 각종 공제를 받으면 각종 공제 후 과표가 6000만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소득공제 규모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과표 6000만원은 소득세율 세 번째 단계인 24%(과표 4600만~8800만원) 구간에 걸린다. 과표 100만원이 늘면 세금 24만원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더구나 최 부장은 자녀 1명이 20세 초과 성인이 되면서 인적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적공제 150만원과 함께 이번부터 없어진 다자녀공제 50만원도 날아갔다. 여기서만 지난해보다 48만원의 세금이 늘어났다. 부인이 재취업하면서 부인 명의로 된 신용카드 공제를 한 푼도 못받은 것도 세금 부담이 급증한 원인이 됐다. 최 부장에겐 ‘13월의 월급’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됐을 뿐이다.

 이같이 실질 세금이 급증해 ‘유리알 지갑’ 봉급생활자의 체감 소득이 줄어들자 연금저축·자녀공제 같은 공제항목을 소득공제로 환원하거나 세액공제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요구는 8월 세법개정안에서 반영될 전망이다. 정부는 우선 연말정산 추가납부세액 10만원 초과 근로자에 대해서는 3개월간(3~5월)분납을 허용해주고 있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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