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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깨는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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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드라마 소재에는 금기(禁忌)가 있다. '섣불리 시청자의 통념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방에는 항상 '다수'의 얘기만 나올 뿐 '소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방송사는 "드라마는 대중적 장르"라며 "소수자는 다큐멘터리 등에서 다루지 않느냐"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이런 태도가 최근엔 바뀌고 있다.철옹성 같던 드라마 소재의 금기가 빠른 속도로 깨지고 있다.9일 방영을 시작한 MBC 주말 드라마 '떨리는 가슴'은 '트랜스젠더(성 전환자)의 삶'을 정색을 하고 다루었다.비중 없는 인물을 설정해 변죽만 울리는 식이 아니다.극의 중심인 주인공이 트랜스젠더다.

주연을 맡은 이는 하리수(30.일러스트 속 사진)씨. 실제 트랜스젠더인 그는 "드라마를 찍다가 진짜로 목놓아 울었다"며 "영화관도 아닌 TV드라마에서, 그것도 가족이 모이는 주말 저녁에 트랜스젠더의 얘기가 안방을 찾아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5년 전이었다. 탤런트 홍석천씨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시청자 반응은 차가웠고, 방송사는 매정했다. 그는 고정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도 잘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출연 섭외가 없었다. 방송사와 시청자는 결국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5년 만에 강산이 변했다. MBC 홈페이지에는 '떨리는 가슴'을 향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소재의 드라마다. 트랜스젠더의 아픔을 이해하게 됐다'(KOUNG0116), '식구들끼리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며 의견을 주고 받았다'(KTWOR0428)는 감상이 쇄도한다,

KBS2 주말극 '부모님 전상서'도 소재의 사각지대를 공략했다. 발달장애아를 둔 가정의 힘겨운 일상을 여과없이 드라마에 담고 있다. 시청률만 의식했다면 어림도 없는 포석이다. 또 SBS는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남편과 아내의 성역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직장인 아내에 '전업 남편'이 주인공이다.

경실련 미디어워치 김태현 팀장은 "그동안 금기시 됐던 소재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며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줄어드는 등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드라마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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