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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의 수몰|공종원(본사 논설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후금박고」라는 구호가 한때 중국 대륙을 풍미한 때가 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1958년부터 그것은 중공의 문화재 파괴 행동강령이었다.
건설을 위해서는 비록「공자묘」라 하더라도 부숴야 한다. 나라의 경제발전이 문제지 고적이야 대수냐는 주장이다.
그「현재를 중시하고 옛것을 무시하는」정책에 따라 수다한 역사의 유적이 실제로 파괴됐다.
남원의 실상사가 수몰의기에 직면해있다는 소식에 접하고 잠시 망연한 가운데 「후금박고」를 생각하게 됐다. 나라의 중요한 문화재들이 건설이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서 손상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뭐 절하나 없어지는데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고 「옮겨가면 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보상사의 경우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도 없다.
우선 실상사는 한국 불교사에서 최초의 위종사찰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구산비문 중 가장 먼저 문을 연곳이 이 보상산문이다. 남한상사 홍척이 당의 서당지장의 법을 받고 귀국하여 이미 있던 실상사를 증수하고 교화를 폈던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비종의 도입자는 물론 홍척에 앞서 도의가 있었으나 실림사에서 구산비문의 가지산파를 연것은 그의 법손 체증에 이르러 가능했다. 그 때문에 실상사는 한국비종의 남상이며 요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는 1천여 년의 역사가 산출한 실상사의 문화재적 가치를 간과할 수 없다. 건물자체는 여러 번 중수되어 1천여 년 전 그 모습은 아니지만 실상사가 국보1점을 비롯해 보물 12점과 중요민속자료1점, 지방 중요 문화재1점 등 모두 15점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환경임을 인식해야겠다.
어느 면에서 보면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그 사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화재를 형성해 수용하고있는 역사환경이며 경관이다.
문화재는 원칙적으로 원형보존을 철칙으로 하고 있으며 그 정선은 우리 문화재보호법에도 엄존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문화재의 환경개념이 도입됨으로써 문화재 개개의 중요성은 그것을 싸고있는 주변환경과 경관에까지 확장적용하겠다는 정부의 기본방침까지 천명된바 있다. 하회마을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은 그 실례다.
그 점에서 보면 실상사의 수몰위기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상사는 우리 불교사상 최초의 비종사찰이란 불교문화유적일뿐더러 수다한 지정문화재 이외에 그것을 포함한 자연경관까지가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민족의 자산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문화 유적일 뿐 아니라 위대한 민족의 자연환경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역사문화유적과 그것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민족생존의 뿌리이며 샘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민족공유의 재산에 그치지 않는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우리의 긍지와 자전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있음으로써 우리의 현실극복의 용기가 생겨나고 발전을 통한 미래상도 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자신이 우리의 문화재들을 손상하고 모멸함으로써 스스로 우리의 생존의 뿌리를 끊고 샘을 말리려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물론 그간 우리정부가 기울인 문화재보전의 정책적 노력을 전혀 무시할 뜻은 없다.
다만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정부의 문화재보전 노력이 때때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문과 독립문은 도로확장 때문에 자리를 옮겨야했고 한강변의 선사유적들은 팔당댐 때문에 수몰됐다.
또 잠실지역의 백제고분군도 도로를 뚫는 불도저 밑에 깔렸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 실상사의 수몰위기 문제는 그 점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문화역사환경을 보존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초미의 급무가 되고있다.
더우기 함양댐은 실상사를 수몰시키지 않고도 가능한 2개의 대안조차 가지고 있다. 지금 중공조차도「후금박고」의 과오를 인정하고 문화혁명기간동안 그들이 파괴했던 문화재보수에 막대한 예산을 할당하고 있다. 정부당국의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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