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무기사업 30년 했지만 통영함 비리 관련자 가장 나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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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김은 “예쁘게 찍어 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모델 출신이어서인지 표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는 “대중에겐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지겠지만 내 자신을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5일 서울 강남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난 린다 김(62·한국명 김귀옥)은 환갑을 넘은 여인처럼 보이진 않았다. 꽤 비싸 보이는 보석 장신구로 화려한 차림을 했다. 그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외)손녀예요. 다섯 달 됐어요. 예쁘죠.” 장녀 지선씨가 지난해 10월 낳은 외손녀 ‘올리비아’의 사진이었다.

 린다 김은 “둘째(지영씨)도 지난 1월 시집을 갔다. 한국인 사위를 보고 싶었는데 사위 둘 다 미국인”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첫째 사위는 연방검사, 둘째 사위는 명문가 출신 변호사”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해외 출장 중에도 팩스로 숙제를 검사하면서 엄격하게 키웠는데 두 딸은 시집을 간 뒤론 완전 남편 사람이 돼…”라며 말을 흐렸다.

 중앙일보는 2000년 5월 린다 김이 백두·금강 등 무기도입 사업 과정에서 불법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2000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군부 실세들 간 권력암투 과정에서 자신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욕을 하면서 싸운 적도 있었다”는 일화도 밝혔다. “나를 망친 중앙일보와 왜 인터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린다 김의 해명은 이어졌다. “이양호 전 장관은 그가 대령 때부터 알았다. 1980년대 전투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미국에 왔을 때 처음 만났다. 지난해 이 전 장관은 뇌혈관이 터져 병원에 입원했다. 서너 번 병문안을 갔다. 이 전 장관 부인과도 만났다. 부적절한 관계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고. 이어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솔직하게 인정한다”고 했다.

2000년 6월 법정 출두 당시의 린다 김.

 - 그가 누구냐.

 “평생 좋아하던 분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다.”

 린다 김의 이름은 2007년 ‘신정아 사건’ 때 다시 거론됐다. 언론이 신씨를 ‘제2의 린다 김’이라고 부르면서다. 그는 “신씨와 같이 언급되는 게 싫었다”고 했다. “신씨는 (나처럼) 비즈니스로 문제 된 게 아니잖나. 신씨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정말 사랑한 거 같다. 한국이니 몰매를 맞은 거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신씨의 자서전 『4001』)만 안 썼으면 좋았을 텐데.”

 린다 김은 “한국에 나와 보니 나는 ‘수녀’처럼 살았다”고 했다. “좋은 데 시집간 부인들을 보면 어린 남자친구를 가진 사람이 많더라. 그들이 과연 내게 손가락질할 수 있겠나”는 뜻이었다. 이 대목에서 린다 김은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내가 나쁜 거 하는 건 이거(흡연)밖에 없다”고 했다.

 - 2000년(로비사건 보도)에 어땠나.

 “건강이 악화됐다. 신경도 예민해지고. 별의별 사람들이 찾아왔다. 친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 이후 어떻게 지냈나.

 “한 번도 쉰 적 없었다. 2~3년간 (본업인 무기사업을) 잠시 접고 부동산 개발사업에 집중했다. (2008년) 서울 서초동의 고급 요정 ‘지안’ 일대 땅도 사들였다. 지금은 (부동산 자산이) 거의 다 애물단지가 됐다. 내가 잘하는 게 이거(무기사업)밖에 없어 계속하고 있다.”

 - 최근 진행 중인 무기사업은.

 “말해 줄 수 없다. 명함도 줄 수 없다. 나는 한국 마켓 일만 하는 게 아니다. 한국 비중은 50% 정도다. 요즘 인도네시아 관련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한두 건 더 하고 일을 후배에게 맡길 생각이다.”

 - 정부는 방위산업 비리를 없애기 위해 정부 간 무기거래인 대외군사판매(FMS)로만 해외무기를 수입하겠다고 한다.

 “FMS에서도 로비스트·에이전트가 다 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정부 사이에서 조정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 매번 방산비리가 왜 나오나.

 “정권이 바뀌면 정권 실세를 잘 안다는 사람이 대개 무기를 팔려고 나선다. 이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험은 하나도 없고 한번 팔아치우면 나 몰라라 한다.”

 린다 김은 해군의 통영함 도입 비리 관련자에 대해 “이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 본 사람 중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분개했다. “로비스트는 무기를 팔면 끝까지 책임을 진다. (통영함 비리 때문에) 우리의 명예도 함께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해외로 무기를 수출한다면서 나 같은 로비스트를 잘 활용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글=정용수·이철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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