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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의 『왕조의 제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어느 사회나 역사 속에서도 문학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나 역사의 모든 분야와 관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나 역사가 우리의 삵의 현장이요 기록일진데, 문학이 그 사회나 역사를 닮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아무리 현실을 닮으려고 한다 해도 거기에는 어쩔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데서 연유하는 것으로서 문학과 현실을 근본적으로 구분시켜주는 것이다. 작가들은 바로 그 한계에 부딪쳤을때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혹은 그 때문에 문학에 대한 집념을 더욱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이 실제적인 시간과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1회전인 것이라면 문학은 상상적인 세계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반성적인 것일수도 있고 전망적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문학이 기존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며 동시에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현실에 대한 전망인 이유는 그것이 언어로 되어 있다는데 있으며 거기에서 문학의 힘은 유래하는 것이다.
이달의 소설 가운데 서기원의 『왕조의 제단』은 문학의 그러한 역할을 보여준 역사소설이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역사소설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반성하고 전망한 소설이라는데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에 『마녹렬전』이라는 연작소설을 통해서 역사속에 있는 지식인을 풍자적으로 그린 적이 있는 이 작가가 조선 왕조 시대의 비극적인 지식인을 다룬 소설을 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로 특기할 일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왕조사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기묘사화」가 일어나기까지 「신진사대부」들과 권력과의 관계를,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추이가 아니라 그들이 연루된 사건들을 통해서 서술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이,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에게 도덕적인 정치를 요구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이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위해 단합하는 한편 처음에는 정치 권력의 주변에 있는 관직으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권력의 핵심에 있는 관직에까지 이르지만, 수구파의 반격을 받고 무너져 버린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한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지식인의 언로의 개방이다.
그것은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이 <말>임을 부각시키고, 그러나 그 <말>이 권력을 행사하기 이전에는 지성에 속하지만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정치에 속하는 것이 되어서 그 기능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이 지식인에게 속했을 때는 불투명하고 유보적인 상태에서 현실에 대한 여러 가지 <반성>과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권력의 행사자에게 속했을 때에는 투명하고 선택적인 상황에서 1회적인 실행을 강요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신진 사대부들의 주장이 초기에는 신선하게 보이다가, 그들의 직위가 상승될수록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말>의 그러한 속성때문인 것이다. 작가 자신이 <후기>에서 조광조에 대해서 『상당히 감상적인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진 사대부들이 권력의 핵심에 이르러서 주장하고 있는 <언로의 개방>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질을 띰으로써 그들의 이상주의적 관념론의 한계로 나타난다.
따라서 <말>과 <지식인>과 <권력>이라는 삼각관계에 대한 이 작가의 탐구는, 사대부들의 이념처럼 정치가 선명한 것일수만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종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기도 하는 포용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이 30여명의 신진사대부 전체의 움직임을 군더더기 없이 엮고 있다는 것은 소설의 재미가 개인의 공적인 삶의 서술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신진 사대부들의 이념이나 도의정치가 구체적으로 혹은 깊이있게 논의되지 않음으로써 신진 사대부들이 출세만을 위해 강경한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구체적인 예는 직위가 상승될수록 그들 상호간엔 분열의 위기를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목소리가 높아지는 메커니즘으로 나타난다. 벼슬에 초연한 것같던 김연이 마지막에 조광조의 사사를 주장함으로써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은 지식인에 대한 작가의 시니시즘일 것인가?
김치수 <문학평론가>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졸 ▲66년 신춘 「중앙문예」통해 데뷔 ▲「한국소설의 공간」 「문학사회학을 위하여」 「현대한국문학의 이논」(공저) 「박경리와 이청준」 등 다수 ▲프랑스 프로방스대 문학박사 ▲전 이화여대 불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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