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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1) 제80화 한일회담(120) 재일교포 국적·처우|김동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회담은 재개됐는데도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예컨대 1, 2, 3차 한일회담을 통해 상당한 쟁점이 해소됐던 재일교포의 국적 및 처우에 관한 문제만 해도 원점에서만 맴돌뿐이었다.
일본측은 이미 이루어졌던 합의사항마저 무시한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자세로 임했다.
일본측은 재일교포의 특수한 내력을 인정한다고 했으나 막상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일본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모든 외국인은 동등하게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2중적 태도를 완강하게 고수했다.
2차대전 이후 태어난 재일교포 2세들에게 대해 이전의 회담에서는 2차대전이전의 거주자와 동일한 취급을 한다고 확약했으나 대일강화조약발표이후 3년간만 잠정적으로 일본체류를 허용키로 한다는 등의 어거지를 쓰고 나왔다.
우리측 이재항총영사(현 대한상의상근부회장)가 『그같은 일본측 주장은 52년의 회담때 일본측이 약속한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고 힐책하고 나서자 일본측 대표는 『그때 그렇게 쌍방간에 논의했을 뿐이지 언제 합의한 일이 있느냐』고 오리발을 천연덕스럽게 내미는 상황이었다.
이에 유태하공사가 『이전의 한일회담결렬의 원인은 법적 지위때문이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태도변화를 추궁하자 일본대표는 말이 막혀 『그러나….』라고만 궁색하게 말해 장내에 폭소가 터져 나을 정도였음에도 일본측은 그들의 자세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쟁점은 재일교포의 강제추방과 관련한 그들의 억지주장이었다. 우리측은 범법을 한 재일교포의 본국강제추방은 그들이 일본에 살게된 역사적 특수배경과 실제로 그들의 생활근거지가 일본이고 그들의 가족이 일본에 계속 살고있는 점 등을 고려해 『양국의 협의하에 결정하자』고 제의했다.
일본측은 「협의」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우리측은 『사예별로 양측이 그때그때 논의해 결정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우리측이 이같은 설명을 아무리 되풀이해도 오불관언의 태도로 「협의」라는 낱말의 뜻을 10여차례 이상 타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측은 『이런 식으로 백날 논의해봐야 아무런 결론이 날 턱이 없는 것이 명야관화하므로 일본측이 재일교포의 국적 및 처우에 관해 규정하고자하는 초안을 제출해서 건설적으로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초안제출요구를 둘러싸고 한일양측은 또 평행선을 긋는 설전만 옥신각신했지 일본측은 도무지 응할 태세가 아니였다.
일본측은 강제추방은 어디까지나 일본출입국관리법을 따라야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재일교포를 다른 외국인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격했다.
일본측은 『그렇다면 한국은 범법한 외국인을 어떻게 다루느냐』며 우리측에 관계법령을 넘겨달라고 역습했다. 그들은 이미 우리측의 관계법령을 입수해 세밀한 검토를 마친 연후임에도 우리 법령을 참고자료로 이용하겠으니 넘겨달라고 짐짓 요구했던 것이다.
거듭되는 회의에 똑같은 설전이 되풀이되는 상황이었다. 일본측은 6차 분과위회의에서 강제추방대상자의 범위를 △유죄인 △소추는 안됐으나 매음행위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자 △불법입국 방조자 △나병·정신질환자 △출입국관리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자 △헌법위반·정부전복·일본국익을 해쳤거나 해칠 의도를 가진 자 등으로 제시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유공사 등 우리측 참석자들은 일본측 제의가 그들의 되풀이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에 대해 특별고려를 한 것이 전혀 없음을 알고 아연했다.
이같은 보고내용을 받은 조장관과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는 많은 재일교포에게 생활보조금으로 연간 지급하는 20억엔을 줄이기 위해 대다수의 재일교포를 일본밖으로 내몰려는 의도를 명백히 한 것으로 밖에 판단할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측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8월20일 처음으로 열리기로 됐던 어업 및 평화선문제분과위회의를 위해 18일 도일했던 장경근의원에게 회의에 참석치말라고 훈령, 회의개최를 유산시켰다.
오오무라수용소의 북송희망 친공교포의 가석방문제 등을 이유로 들어 겸사겸사 대일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계속><김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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