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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배우는 배우들 쉿 ! 선배님이 선생님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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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左: “자, 폼 잡지 말고 다시 한번 해봐.” 이재용左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KBS 공채 탤런트 허충호 씨에게 독백에 대한 집중적인 ‘원 포인트 레슨’을 하고 있다.

‘연기 A부터 Z까지 조련’ 이재용·류승수씨 등 족집게 교사로

中: 류승수左씨가 자신의 3년차 ‘문하생’인 김지석 씨의 영화 데뷔작 ‘연애술사’를 함께 보며 표정 연기 장면 등을 날카롭게 모니터 해주고 있다.

右: 봉태규 임은경 등의 연기 ‘사부’인 배우 안길강씨.[임현동 기자]

# 프로의 '관록'과 아마추어의 '패기'가 만나는 현장

후배들의 연기 지도부터 연기관 확립까지 두루 짚어주는 현역 선배배우들의 개인 연기레슨이 활발하다. 연기 학원이 테크닉 지도에 치중하는 반면 이들은 될성부른 떡잎들을 선별해 맨투맨 방식으로 집중 조련하며 멘토(Mentor.개인 교수)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걸출한 신인들을 속속 키워낸 몇 명은 영화계에서 '보이지 않는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다.

이재용씨는 장혁과 '출산드라' 김현숙 등 부산 출신 연기자들을 발굴, 조련한 베테랑 과외 교사로 유명하다. 부산대 철학과 출신인 그는 영화 '친구', SBS '야인시대', MBC '5공화국' 등에 출연했다. 이달 28일부턴 영화 '도마뱀' 촬영에 다시 합류한다.

"처음엔 돈이 궁해서 시작했어요. 부산에서 13년간 친구와 연기 학원을 동업했는데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보람도, 희열도 많이 느꼈죠. 사실 가르친다는 말 보단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내 준다는 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벽 보고 서 있기 등 다양한 '체벌'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날 때도 있다는 살벌한 수업 분위기. 그러나 효험을 본 이세은 등 연기자들은 촬영을 앞두고 문지방 닳도록 그의 집을 들락거린다. 수강료는 보통 꿀이나 어리굴젓 등 지방특산 먹거리로 받는다.

# 집에 카메라까지 설치하고 "레디 액션"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연예기획사 KM컬처 회의실에서도 '비밀과외'가 한창이었다. 최근 부산에서 영화 '컨테이너의 남자'를 찍고 있는 류승수(34)씨가 모처럼 상경해 3년차 '문하생' 김지석(24)씨의 데뷔작 '연애술사'를 보며 모니터링 중이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김지석씨는 스승의 한마디를 놓칠 새라 귀를 쫑긋 세웠다.

"여기선 표정이 왜 이렇지?"(류)

"연습할 때와 현장 분위기가 너무 달랐어요. 감독님께 다시 한번 찍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신인 주제에 오버한다고 할까봐 차마…."(김)

"이 녀석아, 그땐 무릎이라도 꿇고 너의 진정성을 보여줘야지. 배우가 쪽팔린 게 어디 있어?"(류)

류승수씨는 "나 역시 단역이나 엑스트라로 연기를 시작해 가르침에 굶주려 있었다"며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어 몇 년 전부터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미혼인 그는 3년 전부터 자신의 자취방에서 여러 명의 제자들과 동고동락했는데 "지석이를 빼고,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집에서 나간 후배들도 많다"고 했다. 지금껏 그의 손을 거친 연기자는 줄잡아 서른 명. 이요원.공효진.조동혁을 비롯해 '여고괴담3'의 박한별.송지효도 영화사 이춘연 대표의 부탁으로 세 달간 위탁 교육을 맡았다.

류씨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실시간으로 녹화 장면을 분석하는 등 실전 같은 수업을 진행한다. 덕분에 신인들은 카메라 공포증을 쉽게 극복할 수 있고, 현장 적응력도 빨리 익히게 된다. 그는 신인들의 자신감 독려를 위해 '횡단보도 텀블링으로 건너기' '낯선 사람에게 1000원 받아오기' 같은 황당한 숙제를 내준다고 했다.

"신인들에겐 힘을 빼주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개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오버 액션을 하거든요."

# 박근형·김을동·안길강도 숨은 레슨 선생님들

방송 쪽에선 박근형(65).김을동(60)이 대표적인 '과외선생님'이다. 박근형은 전도연.원빈 등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후배들을 위해 채찍을 들었고, 김을동은 여의도 사무실에서 변정수를 비롯한 여러 후배를 가르쳤다. 물론 아들 송일국도 빼놓을 수 없는 제자 중 한 명이다.

'야수와 미녀'에서 건달로 나온 안길강(39)도 '품행제로' 출연 당시 봉태규.임은경의 족집게 연기 선생님이었다. 차 트렁크에 늘 테니스와 배드민턴 라켓을 갖고 다니는 그는 후배들의 기강이 해이해진다 싶으면 곧장 체력 훈련으로 돌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지칠 때까지 라켓을 휘두르게 해 정신 재무장을 시킨다.

'여고괴담4' 주연 김옥빈과 '소년, 천국에 가다'로 영화에 발을 디딘 CF 모델 차서원은 중견배우 김갑수를 '코치'로 뒀다.

이처럼 현역 배우와 사제지간이 되면 실전 같은 수업으로 기간 대비 교육효과가 높고, 개인레슨 사실이 비밀에 부쳐지는 등 여러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다. 같은 소속사 선후배나 각별한 친분으로 스터디 그룹이 꾸려지다 보니 수업은 소수 멤버십 형태로 진행된다. 선배연기자가 스승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동기유발효과도 큰 편.

이재용씨는 "스승과 제자 모두 광대라는 외로운 길을 택한 사람들"이라며 "공동 운명체라는 결속력이 바로 코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범석 JE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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