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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을 생각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산 대아 호텔 화재 사건과 관련, 호텔 간부들과 함께 부산진구 관계 공무원 4명에게 구속 영장이 신청되고 1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이 호텔에 대한 소방 점검 결과 각종 위법 사항이 적발돼 이를 통보해 놓고서도 무시하고 계속 영업을 해온 호텔 측의 위법 사실을 그대로 묵인, 고발을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호텔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들의 위법을 눈감아 준 것이다. 뇌물 수수와 직무 유기이다. 이들 공무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에 다시 한번 실망의 빛이 역력히 보인다.
직무 유기란 어떤 직책을 맡은 자가 맡은바 자기 책무를 저버리고 다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책무를 저버린다함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
신의 존재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그런 자는 작게는 그가 소속된 조직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의 암적 요소가 되고 만다. 특히 공무원의 직무 유기는 국민의 혈세를 받아 생활하면서 국민 전체의 공리와 민복을 위해 일해야한다는 신성한 책임의 파기이기 때문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 죄도 무겁다.
이들 관계 공무원이 주어진 임무를 철저히 수행했더라면 이 호텔의 불법 영업, 지시 사항의 묵살 행위 등이 감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38명의 억울한 생명이 화마의 연옥에서 숨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제6조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문화하여 공직자의 윤리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이외에도 국가공무원법, 공무원 복무 규정, 공무원 윤리 헌장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직자들이 이 기준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물론 어떤 공직자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며 공직자가 어디 다 그러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쯤이야 「빙산의 일각」이라고 개탄하는 국민의 수는 더욱 많으리란 생각이다. 그것은 단속적으로 발각되는 공직자의 비리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현실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승공, 경제적으로는 근대·산업화를 조속히 달성해야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다른 어느 국가보다 공직자의 투철한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강조돼야 할 처지이다.
공직자도 개인적으로 보면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시대·시민 사회의 세태나 풍조·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직자의 부조리에 시민의 책임을 전혀 무시할 수만은 없다. 즉 시민이 공직자의 비위를 유혹하여 감시·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못 하도록 하는 요인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정의 사회는 정치·사회적인 분위기의 정립과 공직자의 투철한 윤리 의식의 확립, 그리고 시민들의 준법 정신의 제고에서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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