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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천사의 얼굴'을 한 자본 … 참된 행복은 어디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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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피로사회』 『투명사회』로 유명한 한병철 독일 베를린 예술대 교수. 그는 신작 『심리정치』에서 ‘하고 싶다’는 욕망을 창출해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사진 문학과지성사]

심리정치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146쪽
1만1000원

어쩌면 신자유주의는 완곡어법(eupheminism)으로 신자본주의를 표현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나오는 ‘자유’ 때문에 우리는 종종 착시에 빠진다.

부제 ‘신자유주의의 통치술’이 달린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좋아요-자본주의’라 부른다. 교묘한 착취를 위한 신자본주의의 지배 방식을 ‘폭로’한다. 자본은 ‘하고 싶다’는 욕망을 창출해 우리가 스스로 원해서 우리 자신을 착취하게 만든다. 마음마저도 자본의 인질인 게 심리전의 본질이다. 심리정치 시대의 자본은 악마보다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강요는 없다. 지배 관계가 자동으로 형성된다. 착취마저도 달콤하다. 탓할 악마가 없기에 타파할 혁명의 원수도 없다. 대신 스스로를 탓하는 우울증 환자가 양산된다.

 베를린 예술대학 한병철 교수는 철학계의 수퍼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책은 1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는 왜 인기가 있을까. ‘『햄릿』은 아포리즘의 연속이다’라는 평가가 그의 저작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심리정치』 또한 탁견의 연속이다. 예컨대 이런 말이 나온다. “좌파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치켜세웠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반대 원리로 신화화했다. 좌파에게 추악한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일 뿐이다. 그래서 모든 노동자 정당의 강령은 노동 해방을 내세울 뿐 노동에서의 해방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동과 자본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병철 교수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결국 사물이 아니라 기분을 소비한다.” 한 교수 자신의 주장으로 그의 인기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책을 읽으며 특별한 기분을 소비한다. ‘뭔가 속는 것 같으면서도 상쾌한 기분’을 소비한다. 그의 책을 접할 때 분출되는 상쾌한 기분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자본이나 착취 같은 마르크스주의적인 개념을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목도하며 유럽의 좌파는 신선한 회상에 잠기는지 모른다. 또 저자의 글은 간단명료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단문 중심이다. 『심리정치』는 할말은 다 했으나 분량은 146쪽에 불과하다.

 ‘심리정치’에 속지 않고 ‘좋아요-자본주의’에 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가 한번 ‘백치’ ‘바보’ ‘이단아’가 돼 볼 것을 권유한다. 심리정치의 거미줄에서 탈출하려면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자유로워지는 마음과 관점의 ‘리셋(reset)’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심리정치라는 통치술에 대항하려면 무(無)에서 다시 출발해 새로운 언어와 사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치열한 의문도 생긴다. 이런 것들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정치의 본질은 심리정치가 아닐까. 우리를 착취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아닐까. “나는 행복한가”라고 묻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자유로운가”를 물을 때 나는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 자유라는 계몽주의 프로젝트를 무시해야 비로소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닐까.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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